서울대 국가전략위 ‘SNU 국가정책포럼’
1993년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한 중국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튼튼한 군사력 때문이라는 답이 나올 법했다. 하지만 라빈 총리의 답은 전혀 달랐다. “이스라엘에는 세계적인 대학이 7개나 있다. 우리 힘의 원천은 대학이다.”
히브리대는 특허 1만 건, 17조 대박
사회·경제적 가치 창출 지향해야
대학·직업 긴밀한 ‘연계 교육’하고
시민 참여 쌍방향 프로젝트 필요
명문 시카고대 만든 건 교양교육 덕
이웃 아픔 공감하는 인재 길러내야
4500억원 정부 지원받는 서울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 하는지 의문
60년대 사고방식·패러다임에 머물러
그러면서 김 명예교수는 ‘QS 세계대학 랭킹’ 이야기를 꺼냈다. “서울대와 카이스트는 각각 랭킹 37위, 41위로 상위권이다. 반면 히브리대와 테크니온대는 162위, 257위 다. 대학랭킹은 ‘허상’이다.” 김 명예교수는 “연구중심 대학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대학을 지향해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두 번째 기조 발제에 나선 권오현 사범대 교수(전 서울대 입학본부장)는 ‘미래의 인재상과 대학 교육’을 주제로 얘기를 이어갔다. 권 교수는 “학생 개개인은 우수한데 왜 결과물은 그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까”라는 물음을 던졌다. 단순 지식을 가르치는 지금의 교육을 벗어나 고교와 대학, 대학과 직업을 긴밀히 연결하는 ‘연계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통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을 길러내는 ‘역량(지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시했다. 권 교수는 ‘글로내컬(Glonacal) 인재’라는 개념을 꺼냈다. 세계시민성(글로벌), 한국 정체성(내셔널), 지역 전문성(로컬)을 모두 갖춘 사람을 뜻한다. 이를 위해 대학은 일정한 틀 안의 전문성만을 강조하는 교육에서 벗어나 ‘탈 표준화’ ‘학문적 융복합’ 등 노력을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의 사회적 기여와 서울대의 역할’이라는 주제 발표를 한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Civic Engagement’(시민 참여)를 강조했다. 그동안 교육과 연구를 잘하고 사회에 봉사한다는 전통적 의미의 기여는 쌍방향이 아닌 일방통행 식이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2000년대 초 미국의 교육학자 깁슨이 자국의 대학을 비판한 대목을 소개했다. 깁슨은 “시민적 주체로서의 사명과 의무에 관심과 열의를 보이는 총장은 드물고, 단지 종신 계약에 목맨 교수들, 학점과 졸업장에 집착하는 학생들의 집합소일 뿐이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런 비판은 현재 우리에게도 해당한다”며 “대학은 일방적으로 도와주고 봉사하는 것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와 공공기관, 기업 등과 관계 형성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적 참여와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2015년부터 최근까지 총 8차례에 걸쳐 서울 관악구, 강동구 등 지역 주민과 시민활동가 공무원, 지자체 의원들이 참여한 ‘시민정치 수업 프로젝트’ 사례를 소개하며 “교수, 학생, 주민, 시민활동가, 공무원, 지자체 의원 등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교육·연구·실천 프로젝트를 개발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후 진행된 라운드테이블에서는 서울대에 대한 성찰과 비판이 제기되면서 관심을 끌었다.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관악을 보라는 말이 있다”며 “관악을 좀 보고 싶게 해 달라”는 말로 서울대가 처한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서울대가 (일본 도쿄대의 모델을 따라) 법인화했지만 그동안 어떤 혁신이나 변화의 노력이 있었는지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염 전 총장은 “여전히 과거 1960년대의 사고방식과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을 뿐 아니라 위기를 위기로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어 “대학이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서울대가 먼저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 달라”고 주문했다.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서울대는 입학하고 싶은 학교지만, 졸업할 때가 되면 ‘내가 뭘 배웠고, 학교는 무얼 해줬나’는 생각이 드는 대학”이라며 “우리 구성원이 추구하는 인재상은 있는지, 학생과 교수가 진지하게 학문과 삶에 대해 이야기해 본 적이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또 “생각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강의실을 토론 공간으로 바꾸고, 다양한 프로젝트와 세미나를 강화해 사람이 중심이 되고 사람을 성장시키는 현장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시했다.
서울대 법인화 했지만 혁신 안 돼
이석재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불필요한 외부 규제와 간섭도 있지만 변화를 위한 서울대 내부의 동력이 있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법인화 이후에도) 정부로부터 4500억원을 지원받는 서울대가 과연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고민이 들 때가 많다”며 “특히 이웃에 대한 아픔을 공감하는 인재를 잘 길러내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은 벤치마킹해야 할 국내외 사례를 구체적으로 짚었다. 이 주필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는 문사철(文史哲)부터 사회과학, 자연과학까지 묶어내는 교양과목을 가르치고 있다”며 “초기에는 반발이 심했지만 이제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전공 학문에만 치우치는 교육에서 벗어나 학문의 경계를 과감히 허무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주필은 “미국의 대표적 명문대학 중 하나인 시카고대의 사례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지방의 별 볼 일 없던 대학이던 시카고대가 지금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교양 교육을 받은 전문가’를 꾸준히 양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29년 로버트 허친스 시카고대 총장은 부임 이후 모든 학생에게 4년 동안 고전 100권을 읽게 하는 인문학 프로젝트인 ‘시카고 플랜’을 가동했다. 실용 학문 못지않게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SNU 국가전략위는 이번 포럼에서 제기된 문제와 대안을 바탕으로 향후 한국 대학, 특히 서울대가 지향해야 할 변화와 혁신의 미래상을 더 구체화하는데 힘쓸 계획이다.
오세정 총장 “당파성·진영논리 벗어나 정책 대안 제시”
올해는 총 2회 세미나로 나눠 진행된다. 지난 4일에는 ‘대학의 미래와 서울대의 역할’을 주제로 포럼이 열렸고, 오는 11일에는 ‘인구절벽에 따른 위기와 대응 방안’이 주제다. 앞서 열린 포럼에서는 당대 핵심적인 국가적 이슈가 주요 의제로 올랐다. 1, 2회는 협치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가 주요 키워드였다. 2016년 상반기에는 20대 총선이, 하반기에는 탄핵 정국이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시기였다. 박원순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지사,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 등이 토론자로 참여해 대통령제와 내각제에 대해 의견을 펼쳤다. 이듬해 열린 3~5회 포럼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에 대한 토론 자리로 꾸며졌다. 정부의 3대 경제 정책 중 한 축인 소득주도성장에 대해서는 서울대 교수들의 성토가 쏟아져 주목받았다. 개헌 문제, 탈원전 정책 등 문제도 다뤄졌다. 오는 2020년부터는 분기별 1회씩 개최할 예정이다.
김나윤 기자
고성표·김나윤 기자 muze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