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못 이기겠으면 그냥 머리 까고 도망가라’고 말씀하셨어요.” (이희은, 양강도 출신, 90년대 초반 출생)
“아빠 세대에는 주먹이 세다고 하면 좋아했어요.”(오지예, 함경북도 출신, 90년대 초반 출생)
90년대생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머리를 까거나 주먹을 쓰는 일’을 아버지의 입을 빌려 말하는 것이 ‘부모 세대’와 살짝 선을 긋는 느낌이다.
‘성공적인 통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성통만사)가 27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살아남기 위해’ 폭력성이 높은 아이를 길러 왔던 북한의 부모들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성통만사는 지리·직업·사회적 성향 등을 따져 200여명의 탈북자를 인터뷰한 뒤 ‘북한 아동학대 보고서-벗어날 수 없는 폭력’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등장한 이름들은 모두 가명이지만 성통만사 측은 출생 시기와 출신지는 공개했다. 신원이 특정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탈북한 시기는 공개하지 않았다.
물론 여전히 북한 사회에서 폭력은 만연한 상태다. 수용소나 고아원에서는 고문이나 학대가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한다는 증언이 다수다. 성적 학대와 노동력 착취 등 북한 내에서 아동을 향한 폭력과 방임은 위험한 수준이다.
북한 부모도 '내 자식' 맞고 오면 '교사 처벌' 원해
교사였던 김학철씨는 “교사들 사이에서 아동을 때리지 말자는 이야기가 나왔으며, 몇몇 교사들은 실제로 아이를 때리고 난 후 자격이 박탈당했다”고 밝혔다. 함경북도 출신의 90년대 초반 출생 오지예씨도 “성적이 좋지 않았을 때는 맞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학교에서 같이 놀았던 좋은 기억이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증언한 탈북자들은 폭력성이 낮아진 원인으로 ‘낮아진 출산율’을 언급했다. 성통만사는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부모들은 한 명 뿐인 귀중한 자신의 아이가 맞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라며 “부모들은 정부에 폭력을 사용하는 선생을 처벌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돈 거래' 활발해지며 '만사 폭력 해결' 문화도 옅어져
한씨는 “사람들은 다치거나 맞아 피해를 입은 경우 보상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점차 서로 싸우는 것을 피하고 있다”며 “시간이 지나며 점차 사람들이 모든 일을 해결하는 데 돈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신체적 학대 경험, 출생연도 높을수록 줄어
"단언컨대, 북한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성통만사 측도 “증언들만이 주요한 정보 출처고, 개인적 상황에만 한정될 수 있기에 꼭 일반적 추세를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며 “북한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알려지지 않는 데다가 몇몇 탈북민들은 굉장히 폭력적인 경험을 진술하고 있기 때문에 이 변화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