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걷기축제를 하겠다고요? 걷기가 축제가 된다고요? 축제는 풍물놀이 같은 걸로 하는 거예요. 걷기는 대회 같은 걸 하는 거고요.”
- 2010년 제주도청 고위 공무원.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올레길에서 축제를 열겠다며 예산 지원을 문의하자.
“걷기축제를 하겠다고요? 걷기가 축제가 된다고요? 축제는 풍물놀이 같은 걸로 하는 거예요. 걷기는 대회 같은 걸 하는 거고요.”
- 2010년 제주도청 고위 공무원.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올레길에서 축제를 열겠다며 예산 지원을 문의하자.
장면 2
“제10회 제주올레 걷기축제에 오신 올레꾼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2019년 10월 30일 서귀포 약천사에서 원희룡 제주도지사. 국회의원, 도의원, 제주관광공사 사장 등을 대표하여 개막식 축사에서.
“제10회 제주올레 걷기축제에 오신 올레꾼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2019년 10월 30일 서귀포 약천사에서 원희룡 제주도지사. 국회의원, 도의원, 제주관광공사 사장 등을 대표하여 개막식 축사에서.
제주올레 걷기축제 10년을 지켜봤다. 해마다 가을이면 기적 같은 장면을 목격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수천 명이 올레길을 걷는 풍경은 제주도의 어떤 명승보다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 그럼에도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애초의 걷기여행과 본래의 축제는 어울리는 짝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제주올레 걷기축제 10년을 돌아봤다. 먼저 소감부터 말한다. 함께 걸어서 영광이었다.
걷기, 놀이가 되다
축제 참가자는 하루 평균 4000명, 매년 연인원 1만 명 안팎으로 집계된다. 외국인도 매년 1000명꼴로 참가하고 있다. 국적은 일본·중국·스위스·미국·스페인 등 얼추 30개국에 이른다.
그러나 걷기축제는 다르다. 축제의 본질은 흥겨움이고 어울림이다. 춤추고 노래하고 떠들고 취하는 신명의 한마당이다. 고행을 감내해야 하는 걷기와 쾌(快)를 외치는 축제는 차원이 다른 레저활동이다. 이에 대해 창원시 노경국 관광정책관이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그는 2011년 최초로 제주올레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쓴 관광학자다.
“걷기가 축제가 됐다는 건 걷기가 유희의 대상, 즉 놀이가 됐다는 뜻입니다. 하루에 20㎞씩 걸어도 여럿이 같이하면 재미있다는 걸 알아낸 것입니다. 올레 축제가 정착함으로써 걷기여행은 다음 단계로 진화했습니다.”
올레라는 컬트
2011년 6코스를 걸을 때였다. 폭우가 내리던 날 제지기오름을 올랐다. 오름 분화구에 다다르니 흠뻑 젖은 여성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흠뻑 젖은 올레꾼들이 길을 걷다 말고 공연을 지켜봤다. 출발점에선 초등학생들이 동요를 합창하고, 바닷가에선 해녀 할망들이 해녀 춤을 춘다. 자원봉사자 아주머니 7명이 결성한 ‘칠선녀 댄스팀’은 2013년부터 올레 축제를 뜨겁게 달군 인기 스타다.
㈔제주올레 직원들이 처음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나타난 건 2011년이었다. 이후 눈에 띄는 복장과 분장은 올레 축제의 주요 코드가 됐다. 올해 미키마우스 복장을 하고 사흘 내내 축제를 즐긴 올레꾼은 놀랍게도 일본인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레 축제 때문에 제주도에 왔다는 응답자가 94%이었습니다. 여행의 목적이 되는 국내 축제가 또 얼마나 있을까요. 올해 처음 참가했다는 제주도민이 이런 후기를 남겼습니다. ‘제주도민만 몰랐던 제주도 최고의 축제.’ 텀블러 갖고 다니며 일회용품 일절 안 쓰는 올레꾼을 보며 제주도민도 바뀌고 있습니다.”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