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등 지음
문학동네
인문학자 19명이 중국 음식을 소재로 합창한다. 1989년 창립한 한국중국소설학회의 학자들이 한국에서 이미 토착문화가 된 중국요리를 역사를 날줄로, 문학을 씨줄로 삼아 엮어낸다.
한국중국소설학회 19명 학자
인문학 곁들인 음식 이야기
이 책은 오향장육으로 시작한다. 팔각·회향(또는 귤피)·정향·계피·화초의 다섯 향신료, 즉 오향이 돼지고기 맛을 고귀하게 재창조한다. 간장과 오향에 삶은 고기를 차갑게 식힌 뒤 얇게 저며서 쌓고 그 위로 식초에 버무린 마늘을 다져 눈처럼 소복하게 쌓으면 군침을 참기 어렵다. 파와 오이 사이로 고수 향기가 날리고, 고기즙에 젤라틴을 녹여서 굳힌 짠슬이 굴러다닌다. 달지도, 기름지지도 않은 장육은 그윽한 향의 백주와 그렇게 궁합이 잘 맞을 수가 없다.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는 눈으로는 서호(西湖), 혀로는 동파육(東坡肉育)을 각각 즐기는 명소다. 동파는 북송 시대 문장가이자 관료였던 소식(蘇軾·1037~1101년)의 호다. 항저우에서 벼슬하는 동안 서호를 간척해 식수난을 해결하고 멋진 제방까지 남겼다. 공립병원인 안락방(安樂坊)을 세우고 지역 학교인 주학(州學)을 키웠다. 그가 임기를 마치고 떠나게 되자 백성들이 선물을 들고 왔는데, 대부분 서민 음식 재료인 돼지고기였다. 소동파는 자신의 조리법으로 동파육으로 만들어 그들의 혀까지 즐겁게 해주고 떠났다. 중국 음식사에 동파육이 더해지는 순간이다. 중국 음식문화를 이해하려면 인문학적 독해가 필요하다. 어디 음식뿐이랴.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