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브랜드를 시작하려는 디자이너들이라면 한 번쯤 ‘지속가능성’ 문제를 고려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해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옷이 천억 벌이라고 한다. 더는 생산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충분한 옷이 이미 존재하는 가운데, 또 새로운 옷을 만들어 내야 하는 디자이너의 입장이라면 과연 어떤 옷을 만들어야 할까. 서울패션위크 연계 행사로 마련된 이번 ‘지속가능패션 서밋 서울’에서는 지속 가능하면서도 윤리적 패션 환경을 만들기 위한 세계적 패션 전문가들의 발표와 토론이 이루어졌다.
必환경라이프⑧ 지속가능한 패션 스타트업
디자이너가 버려진 회화 작품을 만났을 때
“업사이클링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고 싶어요.”
우리나라 평균 예술가 1인의 한 달 수입 평균은 72만3천원이라고 한다. 그나마도 네 명 중 한 명은 소득이 없고, 2명 중 1명이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한다. 얼킨은 예술가들의 회화 작업을 가지고 제품을 만들고 그 수익을 예술가들과 공유한다. 버려진 재능을 다시 순환시킨다는 측면에서 일종의 ‘재능순환시스템’이다.
이성동 디자이너의 바람은 얼킨을 통해 업사이클링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보통 소비자들은 재활용된 소재로 만들어진 패션 아이템이라고 하면 저렴한 가격을 기대한다. 단순한 재활용이 아닌, 재탄생을 의미하는 ‘업사이클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의외로 업사이클링은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든다. 오히려 새로 만드는 것이 시간이나 비용이 더 적게 든다. 공방 정도로 운영되는 기존 업사이클 브랜드가 아니라, 멋진 사람들이 사용하는 고감도 하이엔드 패션으로,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인정받을 수 있는 멋진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소 18마리 마리로 만드는 자동차 가죽, 버리긴 아까워
컨티뉴는 일주일에 10톤 정도 자동차 가죽을 수거해 백팩 등 액세서리를 만든다. 무상으로 수거 받기 때문에 절감된 비용만큼 제품을 만드는 기술자들에게 되돌려줄 수 있다. 폐기물을 활용하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쓰레기를 줄인다는 것 외에도, 가방을 만들 때 가죽 염색을 따로 하지 않아 물도 절약할 수 있다. 보통 가방 하나를 염색할 때 200리터에서1600리터까지 물이 사용된다고 한다. 또한 자동차에 사용하는 고급 천연 가죽으로 가방을 만들지만 더는 동물을 죽이지 않아도 되고 가공하는데 비용도 들지 않는다. 이는 버섯이나 사과 등으로 만든 친환경 가죽보다도 환경적 효과가 크다. 컨티뉴의 가방은 겉으로는 하이엔드 가죽 가방 같은 편안함이 강점이다. 약 2년간의 소재 개발 끝에 2017년 9월에 시작한컨티뉴는 한 해 약 20만개 정도 판매된다.
쓰레기를 창조하고 싶지 않아서
일련의 친환경 행보보다 오픈플랜이 돋보이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지속가능 윤리적 패션 브랜드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느 수많은 컨템포러리 브랜드처럼 모던한 동시대 여성들을 위한 의상을 선보인다. 브랜드를 시작한 이후 핀란드 헬싱키 패션위크,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후즈 넥스트(who’s next)’ 전시 등에 참석했다. 올해 9월에는 지속가능한 패션 브랜드 테마관인 ‘임팩트X후즈 넥스트 SS20’에 참석해 현지에서 외국 바이어들을 직접 만났다. 이 디자이너는 “외국 바이어들이 오픈플랜을 ‘실제 입을 수 있는 지속가능한 패션 브랜드’라고 평가했다”며 “앞으로 비슷한 브랜드가 더 많아져 이 시장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간다에 일자리 만든다
식수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우간다에서는 물을 마시기 위해 아이들이 매일 먼 길을 오가며 물을 나른다. 대다수의 아이는 하루 3회 이상 20L의 ‘제리캔’을 나르고 있다. 이 같은 모습을 직접 목격한 박중열 디자이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리캔에서 영감을 받은 ‘제리백’이라는 백팩을 만들었다. 약 10L의 물을 담을 수 있는 제리백은 어깨에 멜 수 있어 아이들의 부담을 덜어준다. 또 물통을 빼내면 가방으로도 사용할 수 있어 학업에 도움이 된다. 단순히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우간다 현지에 작은 스튜디오를 열어 현지 주민들이 백팩을 직접 생산할 수 있도록 해 일자리를 창출한다. 특히 아이가 있는 여성들 위주로 고용해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직업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한다. 우간다 스튜디오에는 매니저 포함 약 14명의 현지 주민들이 일하고 있다.
브랜드 ‘제리백’은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다. 물통을 넣은 백팩이 아닌, 다양한 디자인의 가방과 액세서리를 선보인다. 신발 브랜드 탐스(TOMS)처럼 제품이 하나 팔리면 하나는 기부되어 우간다의 어린이에게 백팩이 전해지는 형식을 취한다. 덕분에 현재 약 900여개의 가방이 현지에서 활용되고 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