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긍하기 어렵다. 정부가 ‘하락의 주 요인’이라는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물가도 심상치 않다. 0.5% 오르는 데 그쳐 20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잔뜩 올린 최저임금 때문에 외식 같은 서비스 물가가 뛰었는데도 그렇다. 일반 상품 수요가 위축되지 않고서는 나타나기 힘든 현상이다. 국책 연구기관인 KDI도 “저물가가 지속하는 원인은 수요 위축에 있다. 경기 부진에 따른 저물가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물가 하락으로 인한 디플레이션 공포
정부는 “위기 아니다” 부인으로 일관
위기감이 없으면 위기는 막기 어려워
이 가운데 발표된 물가 하락은 불안을 한층 부추겼다. 자칫 ‘수요 위축→생산 감소→기업 투자 축소→일자리 증발→소득 저하→수요 위축’이란 악순환에 빠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엉뚱하기까지 하다. “물가 하락이 장기화하는 디플레이션은 아니다”라고만 강변한다. 번지수가 틀렸다. 지금 퍼지는 건 현 상황이 위기냐 아니냐 하는 논란이 아니다. ‘점점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그러기 전에 제대로 대책을 세우라”고 국민은 요구하고 있다.
그래도 정부는 그저 “경제 위기란 말은 가짜 뉴스”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나아가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판단이다. 이 정부가 잘못한다고 국민이 꼽은 1·2위가 ‘인사’와 ‘경제·민생’이란 점(한국갤럽 조사)은 안중에 없는 듯하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온통 ‘조국 구하기’ 일색일 뿐, 시급한 ‘경제 구하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국정감사에서도 기존 경제 기조만 옹호하기에 바쁘다. “국정감사가 아니라 국정 감싸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오죽하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경제는 잊힌 자식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고 했을까.
행여 정부와 여당이 경제 위기 불감증에 걸린 것은 아닌지 두렵기만 하다. 경제 위기의 싹은 그런 불감증과 진실 외면 속에서 무럭무럭 자란다. 우리에겐 “경제 펀더멘털(기초 체력)은 문제없다”고 하다가 외환위기를 맞은 쓰라린 기억이 있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 앵무새처럼 “위기가 아니다”라고만 반복할 때가 아니다. “소득주도 성장이 효과를 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변명도 더는 통하지 않는다. 이미 시행한 지 2년 반이 지났다. 소득주도 성장과 친노조·반기업 일변도에서 벗어나 위기 대응책을 하루빨리 내놓을 때다. 시간을 끌수록 경제는 더 헤어나기 힘든 늪에 빠져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