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나라들
비에른 베르예 지음
홍한결 옮김
흐름출판
1981년 6월 25일의 한 장면이 기억난다. 서울의 한 우체국 앞에 새벽부터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다. 전두환 대통령 아세안 5개국 순방 기념 우표를 사려는 인파였다. 그 시절 우표 수집은 ‘국민 취미’였다. 1840년 영국이 찍은 세계 최초 우표(일명 ‘페니 블랙’)가 얼마라는 둥, 1884년 나온 한국 최초 우표(일명 ‘문위’)가 얼마라는 둥, 지금 구매하는 이 우표가 몇 년 후 얼마가 될 거라는 둥, 우표를 모으며 부자 되는 꿈을 꿨다.(참고로 전지 기준 액면가 1000원인 해당 기념 우표는 요즘 2000원에 거래된다)
노르웨이 출신 건축가인 저자(65)의 취미도 우표 수집이다. 수집 기준이 좀 독특하다. ‘페니 블랙’ 이후 지구 위 모든 국가와 정권에서 발행한 우표를 하나씩, 그것도 사용한 것(소인이 찍힌 것)으로 수집하는 것이다. 그 ‘오래된 우표’ 중에서 지금은 ‘사라진 나라들’이 발행한 것만 뽑아, 이에 얽힌 이야기를 책으로 냈다.
근대적 우편제도는 ‘페니 블랙’과 함께 시작됐다. 이 책도 1840년부터다. 영국과 청나라의 아편전쟁이 발발한 해다. 유럽 제국이 식민지를 찾아 전 세계를 들쑤시고 다니던 시절이다. 이들은 자신의 이해에 따라 전 세계에 마음대로 국경선을 긋고 식민 정권을 세웠다. 우표를 발행하는 건 국가(정권)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일이다. ‘사라진 나라들’이 발행한 ‘오래된 우표’는 그렇게 생겨났다.
책은 1840년부터 1975년까지를 10~30년씩으로 나눈 6개 챕터로 구성됐다. 각 챕터는 10개 안팎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다. 이름까지 사라진 나라도 있지만, 현재의 지명으로 남은 곳도 있다. 각 에피소드가 별개 이야기인 만큼 쉬엄쉬엄 읽어나갈 수 있다.
장혜수 기자 hsch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