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지난해 2월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2심)을 파기환송하며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공여한 뇌물액을 원심보다 50억여원 이상 추가로 인정했다. 또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에게 뇌물을 건네며 ‘삼성그룹 승계작업’에 도움을 받기 위해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판단했다.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로 이 부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법, 뇌물액 50억 추가 인정
삼성그룹 승계 도움 받기 위해
부정한 청탁했다고 판단
박근혜·최순실도 고법 돌려보내
대법원은 최씨에 대해선 재단을 설립하고 출연금 등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적용한 강요죄에 관해 협박으로 볼 수 없다며 파기환송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이날 이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은 2017년 1심 판결의 요지와 거의 유사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원심에서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공여한 뇌물로 인정하지 않았던 정유라의 말 3필(34억1797만원 상당)과 최씨가 운영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16억2800만원)을 모두 부정한 청탁에 따른 뇌물이란 취지의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뇌물을 공여하며 당시 삼성그룹의 승계작업에 도움을 얻겠다는 부정한 청탁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항소심과 다른 판단을 내린 핵심 근거는 삼성전자가 최씨의 딸 정유라에게 제공한 말 3필(살시도·비타나·라우싱)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것이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날 말 3필의 소유권이 삼성전자가 아닌 최씨에게 있다며 2015년 11월 15일 최씨가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에게 역정을 냈던 사건을 언급했다. 최씨는 이날 독일에서 삼성전자가 제공한 말 살시도를 넘겨받으며 마주란에 ‘삼성전자’가 쓰여 있자 “이재용이 VIP(박근혜 전 대통령) 만났을 때 말 사준다고 했지, 언제 빌려준다고 했냐”고 박 전무에게 역정을 낸다.
이 소식을 들은 삼성전자 측은 “결정하시는 대로 지원해 드리겠다는 것이 우리 입장입니다”는 말을 전했다.
최순실 역정내자 삼성 “결정대로 지원”…대법, 말 3필 대여 아닌 사준 걸로 판단
김 대법원장을 포함한 다수의 대법관은 “2015년 11월 15일 말 3필의 실질적 사용·처분 권한이 최씨에게 있다고 최씨와 삼성전자가 합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의 증거능력은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 없이도 이 부회장에게 부정한 청탁이 존재하는 사실관계는 입증된다고 봤다.
이날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1, 2심에서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제공한 뇌물이라고 공통적으로 인정한 최씨의 코어스포츠 용역대금(36억3484만원)까지 더해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액은 총 86억8081만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액수가 중요한 것은 이 부회장의 뇌물액이 삼성전자에 대한 이 부회장의 횡령액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대법원 양형규정상 횡령액이 50억원을 넘어가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따라 5년 이상의 형을 선고해야 해 실형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이 부회장이 횡령액을 모두 변제한 점,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점,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뇌물 70억원을 건네 유죄를 받은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집행유예를 받은 점 등은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양형 사유가 될 수 있다. 뇌물액이 50억원을 넘긴다 해도 집행유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란 뜻이다.
박태인·이수정·백희연 기자 park.tae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