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패킹이 유행이다. 하지만 웬만하면 불법이다. 논란이다. 백패킹은 배낭(backpack)을 메고 산·들·바다 어디든지 가는 아웃도어 활동의 하나다. 하지만 통상 백패킹에는 취사·야영도 포함된다. 이 취사·야영의 선을 넘으면 불법으로 흐르게 된다. 백패킹은 자연공원법·산림보호법·하천법·자연환경보전법 등에 줄줄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 백패커들과 1박2일 체험해 보니
국립·도립공원 등 대부분 지역 불법
출입금지 장소서 고기 굽고 야영도
백패커들 "갈 곳 없다" 허가제 요구
공단 "금지 행위, 논의 사안 아니다"
찬성 측 "보증금 받아서라도 풀어줘야"
반대 측 "발 들여놓는 순간 환경 훼손"
백패킹 인구는 최근 2~3년 새 급증했다. 백패킹 전문장비를 취급하는 마이기어의 김혜연 실장은 “등산 인구의 1~2%가 백패커들로 보인다”고 말했다. 월 1회 산행하는 등산 인구가 1000만 명이 넘으니, 10만~20만 명으로 추정된다는 얘기다.
유튜브에는 백패킹 경험담과 정보가 넘친다. 최근 한 방송사에서 한 유튜버가 올린 영상을 문제 삼았다. 산림보호구역에서 금지된 취사·야영을 했다는 것이다. 동부지방산림청은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고 공지했다.
# “지금 이 순간도 불법 백패킹 수백 건”
최고 36도까지 치솟은 지난 3~4일, 백패커 3명과 운악산(935m)으로 향했다. 국내에서 백패킹이 가능한 몇 안 되는 곳 중 한 곳이다.
2016년 7월부터 1년 5개월 동안 세계 곳곳을 백패킹하며 SNS 스타로 떠오른 민미정(41)씨는 “운악산에서는 불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합법도 아니다”라며 “해당 지자체에 문의하니 취사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합법이 아니라는 말은 ‘허용’이 아니라 ‘자제’라는 뜻이었다. 최진선(39)씨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불법 백패킹 수백 건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명자(51)씨는 “우리나라에서 백패킹 할 곳이 별로 없어 해외로 나가기도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단에서는 백패킹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강병선 공단 환경관리부 차장은 “관련법에 분명 금지행위라고 명시돼 있어 허용 여부를 논의할 수조차 없는 사안”이라며 “허용한다면 법적 예외를 두는 꼴”이라고 말했다.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백패킹을 허용한다면 ‘도시 어부’ 방영 후 급속도로 퍼진 해상공원에서의 낚시, 백두대간 종주 중 금지구역 출입 등과 관련한 민원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 국장은 “이럴 경우 자연공원법·산림보호법 등 관련법 자체가 어그러진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의견이 갈린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백패킹이 환경부 혹은 공단에서 관리되지 않는 건 이미 관리할 수 없는 수준으로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아웃도어 레크리에이션은 세계적 추세인데 이를 억누를 수만은 없다”고 주장했다. 레저업계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안전·시설·관리의 문제가 있어 정비 기간이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보증금이나 관리비를 징수해서라도 풀어주는 게 순리”라고 밝혔다.
호젓한 곳을 찾아 해질녘에 사이트를 구축하고 해 뜰 때 철수하는 백패커들의 특성상 현재의 공단 인력으로는 단속이 어렵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공단 관계자는 “취약지역별로 기획·특별 단속을 벌이고 있다”며 “하지만 공원이 워낙 넓어 세심한 부분까지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백패커는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줄타기할 수밖에 없을까. 산악계의 한 원로는 “공단에서 저지대 탐방 활성화를 유도하는 만큼 백패커들도 여기에 맞춰 활동범위를 맞춘 뒤 논의를 넓혀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철 국시모 국장은 "공단은 내년 22개 국립공원에 대해 타당성 조사에 들어간다”며 “백패커들이 허가제를 원한다면 정식으로 공단에 민원을 제기해 논의의 테이블을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밝혔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백패커들의 철칙 '흔적을 남기지 말라'
최초의 백팩(배낭)은 1991년 알프스에서 발견됐다. 기원전 3400~3100년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 옆에 놓인 배낭은 나무와 옷, 동물 가죽으로 만들어졌다. 유희로서의 백패킹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불분명하다. 올레 베르가스가 20세기 초에 룩색(rucksack)을 만들었을 때, 혹은 1920년 로이드 넬슨이 최초의 캠핑 배낭을 만들었을 때, 아니면 1951년 딕 켈티가 현대적 프레임이 적용된 배낭을 만들었을 때를 백패킹의 출발점으로 보기도 한다.
켈티의 배낭은 나무 프레임이었다. 이후 알루미늄 프레임, 허리 패딩, 지퍼 수납 등으로 진화했다. 당시 히피 문화가 백패킹 확산에 일조했다. 파리·룩셈부르크 등 서유럽에서 출발, 이스탄불·테헤란·헤라트(아프가니스탄)·페샤와르(파키스탄) 등을 거쳐 인도 델리까지 이르는 ‘히피 트레일’이 인기였다.
백패커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신념은 '흔적을 남기지 말라(Leave No Trace, LNT)'다. 환경보호를 위해 쓰레기와 자연 훼손 등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LNT는 1991년 미국 산림청과 전국아웃도어리더십학교(NOLS)에서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야외 활동 기술에 대한 지침으로 만들어진 뒤 환경보호 교육단체인 LNT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계정 #insider_min으로 널리 알려진 백패킹 여행가 민미정(41)씨는 “대학 수강 과목을 예로 들면 LNT는 기본 교양이자 전공 필수”라며 “그만큼 지키기 어려우면서도 꼭 지켜야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켈티의 배낭은 나무 프레임이었다. 이후 알루미늄 프레임, 허리 패딩, 지퍼 수납 등으로 진화했다. 당시 히피 문화가 백패킹 확산에 일조했다. 파리·룩셈부르크 등 서유럽에서 출발, 이스탄불·테헤란·헤라트(아프가니스탄)·페샤와르(파키스탄) 등을 거쳐 인도 델리까지 이르는 ‘히피 트레일’이 인기였다.
백패커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신념은 '흔적을 남기지 말라(Leave No Trace, LNT)'다. 환경보호를 위해 쓰레기와 자연 훼손 등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LNT는 1991년 미국 산림청과 전국아웃도어리더십학교(NOLS)에서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야외 활동 기술에 대한 지침으로 만들어진 뒤 환경보호 교육단체인 LNT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계정 #insider_min으로 널리 알려진 백패킹 여행가 민미정(41)씨는 “대학 수강 과목을 예로 들면 LNT는 기본 교양이자 전공 필수”라며 “그만큼 지키기 어려우면서도 꼭 지켜야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