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고민 책 읽다 보니 스르르 풀려

중앙일보

입력 2019.08.10 00:20

수정 2019.08.1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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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사람들

인기 북튜버 조영표씨. ’책을 정말 사랑해야 북튜버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신인섭 기자

책의 물리적 실재는 초라하다. 기껏해야 몇백 그램에 불과한 종이 뭉치, 그 위에 인쇄된 잉크 자국일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을 바꾼다.
 
요즘 ‘뜨는’ 직업인 북튜버로 활동하는 조영표(31)씨가 그런 경우다. 책이 자신의 삶을 바꿨다고 믿는다.

‘도서관에 사는 남자’ 유튜브 채널
2년째 운영하는 조영표씨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 부모 품을 벗어난 조씨는 입대를 앞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하면 성공하나.
 
대학 전공(기계설계자동화공학부)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입학 후 2년 동안 브레이크댄스에 미쳐 누구보다 열심히 비보이(b-boy) 생활을 했지만 평생의 진로로 택할 수는 없었다. 어디 한곳 그런 고민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없다고 느낀 조씨. 무작정 시작한 게 책읽기였다. 처음 붙든 책이, 삶에서 소중한 것은 성공이 아니라 작은 행복이며 인생 그 자체가 축복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자기계발서 『청소부 밥』.
 
이 책을 통해 독서의 매력에 눈 뜬 조씨는 입대 직전에는 독서광이 돼 있었다. 제대할 때까지 100권을 읽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결과는 물론 대성공. 그 힘들다는 훈련소에서도 휴식 시간이면 책을 읽을 정도로 악착같이 매달린 끝에 군 복무한 22개월간 150권을 읽었노라고 했다.


인생의 두 번째 위기도 조씨는 책으로 이겨냈다. 졸업 후 취직한 보험회사. 아무리 개인이 열심히 일해도 회사가 해마다 개선된 보험상품을 내놓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회의 끝에 회사를 그만둔 조씨는 모교 대학 도서관으로 돌아갔다. 문 여는 시간부터 닫는 시간까지,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 역시 가격이 저렴한 ‘학식’을 먹으며 서너 달 동안 책만 읽었다고 했다.
 
2017년 중반에 시작한 조씨의 책 소개 유튜브 채널 이름이 ‘도서관에 사는 남자(도사남)’가 된 까닭이다.
 
지난 7일 만난 조씨는 “책을 소개하는 북튜버 일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고 소개했다. 2년간 94개의 에피소드를 올린 도사남의 구독자 수는 현재 4799명. 새 게시물을 올리면 조회수는 몇백 건이 고작이다. 책 소개는 인기가 덜해서다. 한데 10분 길이 동영상을 제작하려면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첫 번째 정독→핵심 내용을 메모하고 밑줄도 긋는 두 번째 정독(첫 번째 정독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메모와 밑줄 위주로 읽는 세 번째 독서. 공식적인 통독만 세 번이다. 동영상 대본 작성에 촬영·편집까지, 한 편 만드는 데 일주일이 모자랄 정도다. 지난 6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북튜버 지원사업 대상자로 선정돼 한 달 세 번 제작에서 네 번으로 늘어나며 부담이 더 커졌다. 도사남의 수익은 한 달 100만원 정도. 조씨는 “시급으로 치면 몇백원 수준”이라고 푸념했다.
 
그렇게 힘든데 굳이 … .
“돈 보고는 못 한다.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해야 한다. 책 소개 동영상을 만드는 건 내가 하지만, 내 생각과 다른 댓글에 답글을 달며 내가 항상 정답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 행복한가.
“내 인생 목표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드는 거다. 책 읽고 동영상 만들며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 거기서 얻은 깨달음을 나눌 때 가장 보람이 크다.”
 
조씨는 실은 유튜브 채널을 하나 더 운영한다. 풍부한 경제·경영서 독서 경험을 살려 재테크 노하우를 전하는 ‘조랩(cholab)’이다. 구독자 수가 1만89명, 도사남보다 인기가 많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