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가, 물가에만 신경…금융위기 이후 한계 드러나”

중앙일보

입력 2019.07.27 00:20

수정 2019.07.27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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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총재는 ‘통화의 사제(Monetary Priest)’로 불리곤 했다, 세속의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돈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바람에서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 바람이 현실화되는 듯했다. 1980년 이후 ‘중앙은행 독립=물가 안정’이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세속의 권력자들은 적어도 대중 앞에선 중앙은행가의 권능을 존중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통화정책 탈정치화’였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드러내놓고 압박한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들은 정치인 출신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다음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로 선택했다. 터키에서는 중앙은행 총재가 갑작스럽게 교체됐다. 통화정책의 정치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중앙은행의 역사·정치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의미와 파장을 진단해본다.
 

애닐리스 라일스

“중앙은행가들이 정통성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애닐리스 라일스 미 노스웨스턴대 교수
미국서 신뢰 떨어져 정통성 위기
상호의존적인 현실 받아들여야

애닐리스 라일스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금융법·사진)의 지적이다. 중앙SUNDAY는 중앙은행을 둘러싼 정치지형이 왜 바뀌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경제학자가 아닌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중앙은행가들이 그들만의 리그에만 머물다 경제위기를 맞았다”고 말했다.
 
그들만의 리그가 무슨 말인가.
“일본은행(BOJ) 고위 인사는 ‘이웃에 사는 일본 사람들보다 뉴욕 등에서 만난 다른 나라 중앙은행가나 금융인들과 말이 더 잘 통한다’고 내게 말했다. 글로벌 중앙은행가들은 이웃 사람과 쉽게 섞이지 못한다.”
 
통화정책이 전문적이어서 그런 것 아닐까.
“그럴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이 관리하는 돈은 이웃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자신들의 정책이 낳은 결과를 파악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어쨌든 인플레이션 억제 등 부여된 역할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닐까.
“2008년 위기는 글로벌 중앙은행가들이 공유하는 정책 패러다임의 결과다. 그들은 지표로 나타나는 물가만 안정되면 통화정책이 성공했다는 통념을 서로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면에서는 버블이 부풀어 올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저성장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시민들이 중앙은행가들의 역할과 능력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정통성 위기다.”
 
무슨 말인가.
“미국에서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과 이사 등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 대법관이나 중앙은행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자들이다. 중앙은행가는 역량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20여년 동안 그러지 못했다.”
 
중앙은행 독립이 물가안정에 필수이지 않는가.
“중앙은행은 독립적인기관이 결코 아니다. 한 사회에서 중앙은행은 서로 의존적인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다. 요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드러내놓고 통화정책에 개입하고 있는데, 중앙은행가들이 얼마나 의존적인 존재인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강남규 기자
애닐리스 라일스 미국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뒤 하버드법대를 거쳐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금융법 전문가로서 중앙은행의 법적·제도적 장치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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