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위기의 가족, 가족이 흔들리면 미래가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19.07.13 00:21

수정 2019.07.13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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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흔들리고 있다. 여전히 ‘매 맞는 아내’가 있다. ‘살육’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가족 간 인면수심 강력범죄도 늘고 있다. 최후의 안식처로 여겨온 가족의 위기다. 특히 우리 사회에선 사회적 안전망보다 가정안전망을 최우선시해왔기 때문에 그 충격은 더욱 크다.
 
가족 간 강력범죄는 건수도 늘고 양상도 날로 흉포해지고 있다. 전 남편을 엽기적으로 살해한 고유정은 온 국민을 쇼크 상태로 몰아넣었다. PC방 등을 전전하느라 집에 방치한 생후 7개월짜리 딸을 굶겨 죽인 젊은 부모도 있었다. 이들은 태연하게 “죽었겠네. 집 가서 확인해줘”라는 카톡 문자를 주고받았다. 앞서 유승현 김포시의원은 아내를 골프채로 폭행해 심장파열로 사망케 했다. 평소 가정폭력이 얼마나 심했을지 짐작 간다. 의정부에서는 생활고를 비관한 50대 가장이 아내와 여고생 딸을 살해하고 자신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여전한 가정폭력, 증가하는 가족살인
사회적 좌절이 내부를 향하는 비극
성평등 구현, 복지 시스템 정비해야

경찰청의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가족 간 살인사건은 전체 살인사건의 34%로, 타인에 의한 살인(15.7%)의 두 배가 넘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부모나 조부모를 살해해 검거된 사람은 2015년 60명에서 지난해 91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100명을 넘길 것으로 예측된다. 존속폭행으로 검거된 사람도 2014년 988명에서 2018년 2414명으로, 4년 새 2배 넘게 늘었다. 또 지난해 자녀를 살해해 재판에 넘겨진 사람도 전년도보다 60% 증가했다.
 
바로 며칠 전에는 한국인 남편이 베트남 아내를 무자비하게 폭행해 공분을 자아냈다. “아내가 한국어가 서툴다”는 게 이유였다. 남편은 울면서 매달리는 두살 짜리 아들도 폭행했다. 폭행 영상은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됐고, ‘박항서 신드롬’이 한창인 베트남에서까지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 따르면 2007~2017년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결혼이주여성은 19명에 이른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전체 살인 사건 301건 중 55건(18%)은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사건이었다. 살인사건 5건 중 1건 꼴이다.


가족 간 살인의 급증은 경제적 어려움 등 사회적 좌절과 분노, 스트레스를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쏟아낸 것이란 점에서 더욱 비극적이다.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 가족관계, ‘아내든 자식이든 내 소유물, 내 맘대로’란 비틀린 인식도 큰 요인이다. 앞서 의정부 가장의 경우도 ‘자식을 혼자 남겨둘 바에야 같이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겠지만, 그건 자의적 판단에 따른 자녀살해일 뿐이다. ‘가정폭력은 집안일’이라며 경찰, 사법당국이 수수방관한 것도 피해를 키웠다.
 
그 외 사회 안전망의 부재와 복지 시스템의 미비로 육아·보육·노인 돌봄 등을 전부 가족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간병살인’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범죄가 출현하는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치매 등을 앓는 노부모나 배우자를 장기간 간병하다 지친 가족이 결국 살인자가 돼버리는, 초고령화 사회의 비극이다. 간병살인에 대한 통계는 아직 없지만, 지난해 학대 피해 치매 노인 1122명 중 770명(68%)이 가족에게 학대를 당했다(중앙치매센터). 정부가 ‘치매 국가책임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족이 바로 서야 사회가 바로 선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얘기다. 가정이 불행한데, 국가와 사회가 행복할 수 없다. 가정폭력에 대해서는 엄벌에 처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그저 가정을 지키는 것보다 피해자를 적극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둬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개별 가족을 넘어 사회가 육아·노인 돌봄 등을 함께 책임져주는 복지 시스템의 실현, 성평등한 가족 문화의 건설도 시급하다. 날로 가속화되는 저출산·비혼 등 탈가족화, 가족해체를 막는 일도 여기서 출발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