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이 전신인 유공 시절 발행한 사보. 1992년 발행한 사보에는 전기차용 축전기 개발사로 선정됐다는 기사가 담겨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재계 3·4위 기업 공방의 핵심은 배터리 기술이다. 배터리가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만큼 두 회사는 현재로써는 물러설 생각이 없다. 양사가 소장을 통해 주장하고 있는 내용과 논리를 들여다봤다.
SK-LG 배터리 놓고 국내외 소송
SK 90년대 사보 확보해 자료 마련
LG 미국 배터리 공장 사진도 첨부
SK이노베이션이 확인한 1992년 12월 사보에는 유공 울산연구소가 전기자동차용 첨단 축전지 개발 주관 기관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실렸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유공 울산연구소에서 93년 무렵에 한 번 충전으로 120㎞를 달릴 수 있는 전기차와 배터리를 개발했다는 소식도 실려있다”며 “이는 SK이노베이션이 꾸준히 배터리를 연구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전신인 유공이 1993년 발행한 사보 중 일부. 울산연구소에서 전기차와 축전기를 개발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이에 앞서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는 지난달 2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회사) 나름대로 배터리 기술을 개발한 게 1995년부터다. (사업을) 벌리진 않았지만, 그때부터 계속 해왔다”며 배터리 개발 역사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배터리 사업이 해볼 만한 게임이라고 판단해 투자도 늘리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력 스카우트를 통해 배터리 기술을 탈취했다는 LG화학의 주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LG화학이 지난 4월 미국 연방법원에 제출한 소장의 첫번째 페이지. LG화학은 "배터리 플랫폼 기술을 탈취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 미 연방법원]
LG화학은 소장에서 폴크스바겐과 개발하던 배터리 플랫폼 기술을 강조했다. LG화학은 미국 델라웨어주 연방 법원에 낸 소장에서 “LG화학이 개발하던 폴크스바겐 배터리 플랫폼 기술을 SK이노베이션이 훔쳐갔다”고 주장했다. 소장은 A4 용지로 65페이지 분량이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은 조직적으로 LG화학의 지적 재산을 절도했다”며 “전기차 배터리 기술에 연관된 부품과 시스템”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리튬이온 배터리와 배터리 모듈, 배터리셀, 배터리팩과 관련된 부품을 포함한다”고 덧붙였다.
LG화학이 폴크스바겐 배터리 플랫폼을 ‘스모킹 건’으로 지목하면서 양측의 법정 공방은 거세질 전망이다. 그동안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인력 스카우트를 통해 핵심기술을 가져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핵심기술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에 앞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연말 세계 최대 완성차 폴크스바겐의 전기차 배터리 플랫폼 공급을 놓고 경쟁했다. 당시 450만대 규모의 유럽 물량은 LG화학이 주 공급업체로 이미 선정됐고, 삼성SDI가 일부를 수주한 상태였다. 100만대 규모인 북미 물량 역시 미국 공장(미시간주 홀랜드)이 있는 LG화학의 우세가 점쳐졌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이 북미지역 배터리셀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LG화학은 소장에서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전 직원들이 폴크스바겐 관련 제품과 기술을 다루는 곳에서 일했다”고 적시했다. ‘기술 탈취’가 없었다면 폴크스바겐의 북미 물량 입찰에 참여할 기술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LG화학이 소장이 담은 미국 미시건 배터리 생산 공장 내부 모습. [사진 LG화학]
폴크스바겐은 2028년까지 글로벌 전기차 2200만대 생산계획을 발표한 ‘배터리 업계의 큰손’이다. 소장에서도 “폴크스바겐의 배터리 공급 계약은 400억~500억 달러(약 47조~58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하면서 이번 소송이 폴크스바겐에 대한 배터리 공급과 관련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