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죽었다. 환생할 것인가, 떠돌이 영혼으로 남을 것인가. 이런 선택을 해야 한다면 어떨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죽음』을 읽기 전이라면 당연히 전자를 택하겠지만, 『죽음』을 읽고 나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죽음 소재 베르베르 신작 장편
작가가 주인공인 자전적 내용
AI가 작가 대신할 수 있나
묵직한 질문들에 답하는 형식
‘누가 날 죽였을까.’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육신을 잃어버린 걸 깨달은 인기 추리작가 가브리엘 웰즈의 영혼은 자기 자신의 살인사건을 해결하러 나선다. 쌍둥이 동생을 질투하던 형, 작가와 갈등하던 편집자, 장르문학을 혐오하는 평론가. 이중 범인은 대체 누굴까.
하지만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렸을 뿐, 내용은 죽음을 통해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문학에 가깝다. 여기서 삶이란 작가로서의 삶이다. 법학을 전공하고 기자로 활동하다 대중의 지지를 받는 인기 작가가 됐지만 평론가들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주인공은 곧 베르베르 자신이기도 하다.
베르베르는 이 자전적 소설에 작가로서의 자의식을 몽땅 털어 넣었다. “애가 책을 다 읽어? (…)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인내심이 정말 대단해” 같은 출판 위축 현상에 대한 자조부터 시작해, 허세 넘치는 평론가를 유력 용의자로 설정해 순문학과 장르문학이 대립하는 현실을 개탄하며, 경계에 선 입장에서 순수·장르 어느 한쪽의 우위가 아니라 독서 인구의 증가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까지 담아낸다. 심지어 ‘나는 왜 죽었나’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결국 ‘작가라서’다.
‘죽음’이라는 테마에 맞춰 ‘인공지능 로봇이 특정 작가를 대신해 소설을 쓸 수 있을까’라는 화두를 꺼내는 것도 ‘작가라서’다. 역시 작가답게 단호히 부정한다. 글쓰기 특징 정도는 모방 가능할지언정 생각은 베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음반을 산산조각낸 입자 속 어디에서도 음악을 발견할 수 없듯이, 살아있는 인간 정신이 지닌 비물질 파동인 호기심을 로봇은 절대 흉내 낼 수 없기에 그의 작품만의 매력도 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작가로서의 자신을 잃을 바에야 환생이 아니라 떠돌이 영혼을 택하겠다고 결심한 가브리엘은 저승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창작을 계속하기로 계획하는 순간 떠오른 새로운 질문에 가슴이 뛴다. ‘나는 왜 태어났지?’. 어쩌면 베르베르 자신의 다음 작품 테마일지도 모르겠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