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정글 속 바위로 일군 세상은 SF영화처럼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았다. 800년 전 까마득한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 것 같았고, 인간계가 아닌 세상으로 이탈한 것도 같았다. 아무리 해박한 설명을 들어도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물음표가 피어올랐다. 차라리 영화 속을 걷다 왔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아세안의 유산 ⑦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세계유산 된 9~15세기 크메르 유적
400㎢ 단지 안에 사원만 100개 넘어
힌두신화 새긴 800m 부조엔 신비감
시엠립 외곽 ‘밴티 스라이’도 볼 만
‘신 꿈꾼’ 크메르 건국왕의 힌두교 이상향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오전 5시, 툭툭(오토바이를 개조한 택시)을 타고 사원 입구로 향했다. 가이드와 함께 플래시 불빛에 의지해 사원 안 연못가에 자리를 잡았다. 사원 뒤편 하늘이 붉게 타올랐다. 800년 전, 앙코르 와트를 지은 수리야바르만 2세는 날마다 이 풍경을 봤을 터이다.
더 놀라운 건 세계 최대의 종교 건축물을 완성하는 데 고작 37년(1113~1150년 추정)밖에 안 걸렸다는 사실이다. 하루 2만 명이 노역에 시달렸다는 걸 생각하면 수리야바르만 2세는 포악한 군주였고, 600년 걸려 완공한 독일 쾰른 대성당을 비교하면 당시 크메르의 과학·건축기술은 최첨단이었다. 이 모든 게 종교의 힘으로 가능했던 걸까. 정수리가 녹아버릴 듯한 더위 속에서 상식 너머의 상상력을 동원하려니 머리가 핑 돌았다.
앙코르 유적을 둘러본 여행자는 저마다 자기만의 사원을 꼽는다. 압도적인 크기의 앙코르 와트보다는, 작지만 매력적인 사원에 마음이 더 끌린다. 일몰이 아름다운 사원, 조각이 근사한 사원, 자연과 조화를 이룬 사원 등등. 예술성을 따졌을 때 시엠립 외곽의 ‘밴티 스라이’ 사원을 최고로 치는 사람이 많다.
이 사원에는 사연이 전해진다. 1923년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가 밴티 스라이를 찾았다가 여신상 하나를 떼어냈다. 파리로 향하던 말로는 프놈펜공항에서 밀반출 혐의로 체포돼 체면을 구겼다. 밴티 스라이에서만 도둑질이 횡행했던 건 아니다. 19세기 프랑스 탐험가가 정글에서 유적 단지를 발견한 이후 앙코르의 모든 사원이 도굴꾼의 탐나는 먹잇감이었다.
한국도 ‘코끼리 테라스’ 등 복원 도와
현재 프랑스·영국·일본 등 17개 국가가 앙코르 유적 복원을 돕고 있다. 약탈당한 유물이 많을 뿐더러 긴 세월을 거치며 훼손된 사원이 많아서다. 한국도 원조국이다. ‘프레아피투’ 사원과 ‘코끼리 테라스’ 보존·복원 사업을 맡고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김광희 국제교류팀장은 “코끼리 테라스는 크메르 제국 시절 출병식이 열린 광장으로 지금도 캄보디아 왕이 앙코르를 찾으면 여기서 행사를 연다”고 설명했다.
영화 ‘툼 레이더’에도 나온 ‘타 프롬’은 아마도 가장 많은 여행객이 인증샷을 찍는 사원일 것이다. 뱀 같은 스펑나무 뿌리와 그물 모양의 이행나무가 사원을 휘감은 모습이 워낙 압도적이어서다. 앙코르 와트가 인류 문명사의 위대한 걸작이라면, 타 프롬은 인간이 만들고 자연이 매만진 기기묘묘한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타 프롬을 방치하면 나무가 사원 전체를 집어삼킬 것이다. 캄보디아 문화재를 관리하는 ‘압사라청’은 수시로 나무를 쳐내고 성장 억제제를 주사한다고 한다. 찬란한 문명보다 힘센 건 자연일 터이다. 정글 속 사원을 나오며 든 생각이다.
여행정보
캄보디아는 비자가 필요하다. 인터넷으로 e비자를 미리 받거나 현지 공항에서 도착 비자를 신청해야 한다. 단수 비자 30달러. 에어서울이 인천~시엠립 노선에 주 3회 취항한다. 5시간 소요. 캄보디아는 한국보다 2시간 늦다. 6~10월은 우기다. 보통 오후에 소나기가 내린다. 가장 더운 4·5월에 여행하는 것보다 낫다. 캄보디아 화폐는 ‘리엘’이다. 미국달러도 통용된다. 1000리엘 약 300원. 앙코르 유적 입장권 1일 37달러, 3일 62달러, 5일 72달러.
취재협조=한·아세안센터
취재협조=한·아세안센터
시엠립(캄보디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