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대형 재해 복구, 성공과 실패
15일 수화기 너머 장인환(48) 용촌1리 마을대책위원장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는 “지쳐가는 것, 무기력해지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강원도 동해안 산불 한 달여, 매일 마주하는 폐허는 이재민을 지치게 하고 있다.
동해안 산불 한 달, 현장서 배우다
살 곳 없는데 구호 물품만 답지
복구비 지원 더뎌 엇박자 행정
고베 대지진 이후 전문가팀 활약
관광도시 변신, 재해 복구 한 획
‘카트리나’ 뉴올리언스 찾은 피트
이벤트로 주택 지을 기부 이끌어내
어제 불난 듯 마을엔 아직도 탄내 진동
이날 대책반이 꾸려진 고성군 토성면 행정복지센터 2층은 성금 전달식으로 분주했다. 고성군 관계자는 “성품은 시가 직접 받지만, 성금은 모두 재해구호협회에 기탁해 배분하게 된다”고 말했다.
후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산불 직후 구호 물품으로 헌 옷이 잔뜩 왔던 것처럼 도움의 손길도 엇박자가 나고 있다. 이재민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소통 채널이 부족하다. 현장과 행정의 온도 차도 크다. 주민들은 "국민 성금액으로 집이 전파되면 3000만원, 반파 시 1500만원만 받았을 뿐 정부 지원을 받은 게 없다"고 말했다. 강원도 측은 “일차적으로 국민 성금이 나갔고, 정부 차원의 복구비는 복구가 시작돼야 지원된다. 세부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사이 주민들은 살 곳을 찾아 마을을 떠나고 있다. 고성·속초·강릉·동해 4개 시·군의 이재민 중 388가구 875명이 현재 임시주거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나머지 153가구 340명은 친인척 집에 머물고 있다. 298가구가 농사 등을 위해 살던 곳에 임시 조립주택을 짓길 희망했으나, 현재 8가구에만 보급된 상태다. 장인환씨는 “처음에는 마을회관에 있다가 불탄 집 보는 게 마음 아파 공무원 연수원 시설로 들어가는 주민들이 늘었지만, 여름철까지 계속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결국 문제는 ‘집’이다. 완전히 복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머물 임시주택도 필요하다. 이날 다수의 건축가와 현장 동행했다. 앞장서서 돕고 싶지만, 소통 방법을 찾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김인철 부산시 총괄 건축가, 천근우 한국건축가협회건축봉사위원장, 김민호 변호사를 비롯해 서상하·차성민·전성은·남기봉 건축가가 함께 현장을 둘러봤다. 재난이 일상이 된 시대에 체계적인 복구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목소리가 모였다.
김인철 건축가는 “2017년 지진 이후 아직도 체육관 대피 생활을 벗어나지 못한 포항의 이재민과 이번 동해안 산불 사태를 보면서 더는 방관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재난이고, 재난을 기회로 만들 수 있게 전문가들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대형 재난을 겪은 해외의 복구 현장에서 배울 점이 많다. 재해 지역의 복구 절차는 통상 3단계로 나뉜다. 천근우 건축가는 “1단계로 학교와 마을회관 같은 임시 대피처로 피신하고, 2단계로 원래 마을과 집이 복구되기까지 6개월~3년간 머물 수 있는 임시주거시설을 짓고, 마지막이 마스터플랜을 통해 집과 마을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1995년 고베 대지진을 기점으로 재해 복구의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사망자만 6000명이 넘고, 이재민만 20만 명에 달했던 대형 재해였던 만큼 모두가 뜻을 모아 제대로 된 복구 매뉴얼을 만들었다. 현장과 행정의 온도 차를 메꾼 것은 민간 전문가팀이었다. 도시계획·건축·회계사·변호사·부동산 중개업 관계자 등 50여 명이 팀을 꾸려 ‘선 조치 후 계획’을 모토로 빠르게 복구해나갔다. 공공은 특별법을 공포해 전문가팀의 활동 범위를 넓혔다. 주택 복구뿐 아니라 도시 마스터플랜도 새롭게 한 결과, 지진으로 망가졌던 도시는 관광도시로 탈바꿈했다.
인도네시아 임시주택은 이재민들 외면
임시주거지에 대한 고민도 많다. 2004년 인도네시아 반다아체 쓰나미 현장이 반면교사가 됐다. 당시 중국·일본·대만 등에서 앞다퉈 임시주택을 지었으나, 주민들은 그 집에서 살기를 거부했다. 살던 마을에서 외떨어진 곳인 데다가, 지역 기후에 맞지 않은 건축물을 지은 탓이었다. 천근우 건축가는 “열대성 기후인 인도네시아는 집의 바닥이 지면으로부터 높게 설치된 ‘고상주거’여야 하는데, 현지 상황과 맞지 않게 바닥에 딱 붙여서 임시주택을 짓는 바람에 주민들로부터 외면당했다”고 설명했다.
임시주거지도 휴양시설 재활용 가능
무엇보다 장기적인 계획이 중요하다. 중국은 2008년 쓰촨성 지진 이후 최대 피해지역이었던 베이촨현을 2020년까지 새 도시로 완전히 복구한다는 계획을 잡고 현재도 추진하고 있다. 도시 양 끝쪽은 재난을 대비해 커다란 녹지지역 으로 계획했다. 김인철 건축가는 “남의 일이 아니다. 함께 복구해 나가자. 재난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성=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