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특히 IS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48)의 귀환 뒤 처음 맞는 라마단이라 더욱 긴장감이 감돕니다. 알 바그다디는 미국 정부가 최고 2500만달러(약 290억원) 현상금까지 내건 IS의 수괴로서 그가 영상으로 등장한 건 2014년 칼리프 국가 IS 수립 연설 이후 5년 만입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공개된 18분짜리 영상에서 그는 조금 더 나이가 들고 살도 붙은 모습입니다. 한동안 폭격으로 사망했네, 척추를 다쳐 불구가 됐네 하는 소문도 돌았습니다만 적어도 공개된 화면 속 알 바그다디는 ‘이상 없음’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관록이 붙어 '전투력'이 강화된 느낌입니다.
“무자비한 행태와 달리 과묵한 성격에 편집증적 성향.”
영국 런던 주재 이라크 경제개혁연구소의 사자드 지야드 연구원이 2014년 뉴스위크 인터뷰 때 알 바그다디를 두고 한 말입니다. 그 역시 직접 만난 건 아니고 알 바그다디와 접촉했던 이들로부터 얻은 정보로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사실 전 세계를 떨게 한 IS의 잔혹한 행위(인질 참수, 여성 성노예화, 각지의 테러 등)에도 불구하고 그 지도자인 알 바그다디에 대해선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시피 합니다.
5년 만에 모습 드러낸 IS 지도자 알 바그다디
이슬람 라마단 맞아 전 세계에 '테러 주의보'
빈 라덴은 9.11 테러 전인 1998년 12월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 은신처에서 추종자들에게 동영상 메시지를 보낸 바 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알 바그다디 모습은 당시 빈 라덴의 전투복 차림과 벽에 기댄 소총까지 빼닮았습니다. 이 닮은꼴을 통해 알 바그다디가 전세계 추종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성전은 끝나지 않았다, 나를 따르라"입니다.
국제 테러를 벌이고 미군에 쫓겨 은둔생활을 했다는 점에서 알 바그다디와 빈 라덴은 종종 비교돼 왔습니다. 미 연방수사국(FBI)의 공개 수배 현상금(2500만 달러)이 최고 수준인 것도 같은 점입니다. 다만 빈 라덴의 경우 한때 미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반군 활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서방에 알려진 정보가 적지 않단 얘기죠. 반면 알 바그다디는 처음부터 이라크 내 반미 무장반군으로 등장했습니다.
2014년 뉴스위크 보도에 따르면 그가 수니파 이슬람 무장조직에 합류한 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계기입니다. 사담 후세인(1937~2006) 정권이 무너진 후 폭동과 혼란 속에 세력을 불린 수니파 반군들은 다양한 군벌을 형성했습니다. 알 바그다디는 그 중 자마아트 알 타위드 와 알 지하드(Jama’at al-Tawhid wa’al-Jihad, 유일신과 성전이란 뜻), 줄여서 타위드 왈 지하드(JTJ)로 불린 조직에 몸담았습니다.
JTJ는 한국과도 악연이 깊습니다. 2004년 김선일 피살사건입니다. 요르단 출신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가 이끌던 JTJ는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 철회를 요구하며 이라크 내 한국 군납업체인 가나무역 직원 김선일을 피랍했지요. 김씨는 피랍 3주 만인 2004년 6월 22일 참수한 상태로 발견돼 전 국민적인 공분을 불렀습니다.
이후 JTJ는 이라크알카에다지부(AQI)로 이름을 바꿨고 지도자 알 자르카위는 2006년 미군 공습에 사망했습니다. 알 바그다디는 조직이 이라크이슬람국가(ISI)로 바뀐 후 2010년 에미르(군주, 지도자)로 추대됐습니다. 이후 몇 번의 이름 변경과 세력 확산 속에 IS 칼리프를 참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테러리스트인 사람은 없습니다. 1971년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130㎞ 떨어진 사마라에서 태어난 알 바그다디 역시 학창시절에는 차분한 성격이었답니다. 축구팀 에이스로도 활약했다는군요. 당시 동급생들은 “그가 과격파도, 반미도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여러 보도를 종합하면 알 바그다디가 이슬람 과격사상에 빠져든 것은 대학원 때로 보입니다. 지하디즘을 옹호하는 무슬림형제단 지도자들 저서를 읽은 게 계기라는군요. 하지만 그의 눈엔 주류 무슬림형제단이 행동보다 이론을 우선시하는 걸로 보였는지, 그의 삼촌이 무슬림형제단 합류를 권했을 때 이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알 바그다디는 여러번 결혼과 이혼을 했는데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첫 결혼은 2000년 그가 바그다드대학에서 이슬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즈음이었답니다. 첫째 배우자와 사이에 2남 2녀를 뒀다는데 이들 중 일부는 시리아 내전 중에 사망한 걸로 보입니다. 2014년 레바논에서 붙잡힌 전처 사자 알둘라이미는 알 바그다디를 '평범한, 가정적인 남자'로 묘사했다는군요.
대테러 전문가들은 알 바그다디가 이 수용소 생활 동안 네트워크를 다진 것으로 분석합니다. 당시 후세인 정부의 정보 참모들도 같은 캠프에 있었는데 그들을 통해 전략·전술을 익혔다는 얘기도 있고요. 사실이라면 미국이 호랑이 새끼를 키워서 놓아준 꼴입니다.
대신 시리아 내전의 혼란을 틈타 빈 라덴조차 못했던 ‘국가 수립’을 해냈습니다. 나아가 그 자신의 신비주의와 인터넷 선전전을 활용해 전 세계에 걸쳐 추종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한때 영국 크기만 했던 영토는 사라졌을지라도 탄탄하게 엮은 국제 네트워크를 통해 각국 안보를 위협하는 중입니다.
이번 영상에서 알 바그다디는 지난 부활절(4월 21일)에 스리랑카에서 벌어진 연쇄 폭탄테러 배후에 IS가 있다고 자임했습니다. IS의 시리아 내 최후 거점이었던 바구즈를 잃은 것에 대한 보복이라는 주장입니다. 또한 투옥돼 있거나 숨진 대원들의 복수를 계속 추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IS의 깃발 아래 앞으로도 세계 곳곳에서 무고한 목숨들이 사라지게 될 거라는 경고입니다.
미국이 9.11 테러 이후 2011년 5월 빈 라덴을 사살하기까지 꼭 10년이 걸렸습니다.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정의가 실현됐다”며 작전을 자축했지만 안타깝게도 테러전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오랜 분노와 원한은 알 바그다디라는 괴물을 키워냈습니다. 그 깃발 아래 또다른 극단주의자들이 모이는 걸 막기 위한 추격전은 오늘도 계속됩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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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 알 바그다디가 이슬람국가(IS) 수립 때 추대된 '신정일치 지도자'의 이슬람식 명칭은?
정답 : 1번 칼리프 ( 알 바그다디는 2014년 6월 29일 칼리프(신정일치통치) 국가 IS 수립을 참칭하고 칼리프로 추대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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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 알 바그다디가 급진화된 계기로 알려진 이라크전 때 미군이 권좌에서 축출한 대통령은?
정답 : 3번 사담 후세인 (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혼란을 틈타 알 바그다디는 급진 무장단체에 합류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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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오사마 빈 라덴과 마찬가지로 알 바그다디에 건 현상금 액수는?
정답 : 2번 2500만 달러 ( IS의 수괴 알 바그다디의 소재를 찾기 위해 미국 정부가 내건 현상금은 2500만달러(약 290억원)에 이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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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 5년 만에 공개된 영상에서 알 바그다디가 언급한 최근 연쇄폭탄 테러 국가는?
정답 : 4번 스리랑카 ( 알 바그다디는 지난 부활절(4월21일) 스리랑카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발테러가 IS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