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인사이드피치] 스포츠 우먼파워
그렇게 스포츠에서 여성을 떠올릴 때는 어머니 이미지와 함께 ‘조연’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것도 지나간 얘기다.
NFL 버커니어스 첫 여성 코치 선임
뤼카 푸유의 호주오픈 4강 진출
여자 선수 출신 모레스모가 도와
방송 중계·해설, 구단 자문역까지
‘금녀의 영역’ 오래된 편견 허물어
배구 박미희 이어 농구 유영주
한국도 여성 리더 활동 반경 넓혀
멘도사, 여성 첫 MLB 플레이오프 중계
주로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콤비로 ESPN 야구의 시그니처 방송 ‘선데이나이트 베이스볼’ 중계를 하는 멘도사는 올 시즌을 앞두고 획을 하나 더 그었다.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의 특별보좌역으로 브로디 밴 웨그넌 단장에게 야구 운영에 대해 직접 조언하는 역할을 맡았다. 멘도사는 현직 방송인으로 야구단 운영에도 직접 관여하고 있다. 그는 두 아들의 어머니이다.
당시 푸유의 쾌거와 함께 더 빛나는 조명이 그의 여성 코치에게 향했다. 한때 여자테니스 세계 정상(2006년 윔블던 등)을 누볐던 아밀리에 모레스모(프랑스)가 그의 코치였다. 여자 선수를 가르치는 남자 코치는 하나도 이상하지 않지만, 남자 선수를 가르치는 여자 코치는 뭔가 낯선 것이 우리의 고정관념이다. 그러나 스스로 여자테니스 세계랭킹 1위 출신의 모레스모는 2014년 앤디 머레이(영국)의 코치로 활약하면서부터, 여성 코치도 얼마든지 남자 선수를 잘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당시 세계정상권에 있던 머레이는 일부 편협한 기성세대로부터 “여성 코치 다음에는 개(dog)를 코치로 쓸 거냐”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머레이는 그런 시선을 일축하고 모레스모를 인정했다. 그는 “모레스모는 코치로서나 인생의 선배로서 내게 많은 도움을 준다. 그 경험만으로도 내게 꼭 필요한 코치다”라며 2년간 모레스모와 동행했고, 푸유의 코치 선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현재 남자테니스에는 약 8% 선수가 여성 코치와 함께하고 있다. 가족, 친척인 경우가 많지만, 모레스모처럼 코치로서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세계 톱랭커를 리드하는 코치도 나타나고 있다.
국내 스포츠에서는 지난 3월 여자배구 통합우승을 차지한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의 우승 헹가래를 기점으로 새삼 여성리더십이 부각되고 있다. 박 감독은 국가대표 선수를 거쳐 2006년부터 방송해설을 했고, 2014년부터 흥국생명 감독을 맡고 있다. 박 감독 이외에 핸드볼 임오경 감독(서울시청)과 축구 이미연 감독(보은 상무), 하키 임계숙 감독(kt) 등은 이미 국내 스포츠계에서 그 리더십을 인정받은 여성 지도자들이다.
축구 프리미어리그 여성 CEO 모색
그들은 “지도자를 남녀로 구분하지 말고 동등한 리더로 봐 달라”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이들은 아직 ‘여성팀의 여성 감독’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지만, 리더의 어떤 기준에 ‘여성이라서’라는 전제가 필요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지난달 팀을 만든 여자프로농구 BNK캐피탈 유영주 감독 역시 “강한 통솔력과 리더십에 있어 여성 지도자가 남성들보다 약하지 않다는 걸 보여 주고 싶다”며 당당하게 포부를 밝혔다. 한편으로는 아직 ‘여성이니까 여자 선수들을 잘 이해하고 이끌 것이다’라는 일부의 관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여자 감독은 안 된다’는 한때의 편견은 이미 깨졌다.
어린 남자 선수들에게는 여성의 어머니 리더십이 오히려 더 경쟁력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남자초등학교배구는 최근 3년 연속 전국 최강 팀에 여성 코치들이 활약하고 있다. 2017, 2018년 각각 전국대회 정상에 오른 울산 언양초 김엄지 코치, 올해 2019 연맹회장기(1월), 24회 재능기 전국초등학교 배구대회(4월)에서 거푸 정상을 차지한 면목초 남자배구팀 임혜숙 코치의 활약은 충분히 시선을 끈다. 일신여상 시절 118연승이라는 고교 여자배구 최다연승 기록의 주역이었던 임혜숙 코치는 지난 4년 동안 선수들 하나하나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자상한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어 전국 무대 정상에 올랐다. 이들은 어린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경기에 대한 분석과 전략 등에서도 탁월했다.
지구촌 최고 축구리그로 불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지난해 11월 현 리차드 슈다모어 사장의 뒤를 이을 최고책임자(CEO)로 수재나 디나지(53) 현 애니멀 플래닛 사장을 발탁했다고 발표했다. 1992년 프리미어리그가 지금의 모습이 된 이후 천문학적인 액수를 벌어들이는 프로스포츠 최고의 무대마저 성적 선입견 없이 오로지 그 능력만으로 여성 CEO를 초대한 것이다. 디나지는 오히려 영입 제안을 거절했다. 프리미어리그는 아직 후보를 물색 중이다.
국내 스포츠도 여성팀 지도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여성의 진출이 활발해져야 한다. 여성은 당당히 전문성으로 경쟁하고, 주체들은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성 스포츠 리더의 발탁을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를 거쳐 인터넷 네이버 스포츠실장을 지냈다.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대표이사로 7년간 재직한 뒤 지금은 데이터업체 스포츠투아이 대표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