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착한 기업’도 표방하지만 이익 극대화가 궁극적 목표인 기업에 신뢰란 어떤 의미일까. 재계에서는 두 사람이 내린 신뢰에 대한 정의에 부합하거나 배치되는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국내 바이오 업계는 물론 증시까지 뒤흔든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인 ‘인보사케이주(이하 인보사) 사태’가 대표적이다. 인보사의 주성분 중 하나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때의 연골유래세포가 아닌 태아신장유래세포로 밝혀져 유통과 판매가 중단됐다. 이웅렬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평소 “20년 걸려 낳은 네 번째 자식”이라며 자부심과 애착을 보인 대형 신약이지만 종양을 유발할 수 있는 신장세포로 만들어져 후폭풍이 거세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되는 의약품인데도, 코오롱은 인보사의 임상시험부터 판매까지 12년여 동안 무엇을 감춘 것인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무엇을 밝혀냈나.
이익만 좇는 기업 후진 행태 줄이어
선진국·후진국은 ‘신뢰 자본’ 차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 재수사는 기업과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실마리가 될지 관심을 끈다. 재수사는 지난해 11월 피해자들이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을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그 후 5개월여 사이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인 필러물산을 시작으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 등이 줄줄이 구속됐지만, 판매사의 최고 책임자인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는 구속을 면했다. 이들 기업이 2011년까지 9년간 판매한 ‘가습기 메이트’는 옥시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다음으로 많은 피해자를 낸 제품이다. 소비자들은 이들 제품을 건강에 유익한 ‘살균 도구’라고 믿었다.
이른바 ‘동물국회’로까지 변질한 정치권에서 신뢰의 단서를 찾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 와중에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걸음 다가섰다던 기업의 어처구니없는 행태가 줄을 잇고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1995년 펴낸 『트러스트(Trust)』에서 국가 번영을 이루기 위한 중요 요소의 하나로 ‘신뢰’를 지목했다. 그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신뢰 자본’의 차이”라며 “신뢰 기반이 없는 나라는 사회적 비용 증가로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용은 비교적 쉽게 쌓을 수 있지만 이보다 더 포괄적인 믿음인 신뢰는 다르다. 쌓기도 어렵지만,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남승률 경제산업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