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은 고(故) 조양호 회장의 장례 절차와 더불어 경영권 승계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한항공 안팎에서는 조 전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그룹 경영권을 이어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실적으로 한진가(家)에서 경영권을 승계할 만한 사람이 조 사장밖에 없다. 조 사장은 현재 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과 주력 계열사 대한항공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조현아(전 대한항공 부사장)·현민(전 진에어 부사장) 두 딸은 각각 이른바 ‘땅콩 회항’ ‘물컵 갑질’ 등으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며 경영에서 손을 뗐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조 사장의) 경영 능력을 떠나 삼남매 중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있고 대안도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안팎 악재 겹친 대한항공 조원태
한진가 뭉치면 경영권 문제 없어
2000억 상속세 마련이 최대 과제
빚더미 아시아나항공의 박세창
당장 나서기는 어려워 물밑 역할
알짜 계열사 매각 등 정상화 모색
증권가에서는 조 전 회장이 보유했던 한진칼·대한항공 등의 주식가치와 비상장 주식, 부동산 등의 가치를 고려하면 유족이 부담해야 할 상속세가 2000억원가량 될 것으로 추산한다. 한진가는 주식담보대출과 배당, 그 외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상속세를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식담보대출은 보통 평가가치의 50%까지 가능하다. 다만 한진가의 한진칼 지분 27%가량은 이미 금융권 등에 담보로 잡혀있다. 상속 주식의 일부를 매각해 현금화하는 방법도 있다. 만약 이 과정에서 상속받는 한진칼 지분까지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자칫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도 있다. 그동안 총수 일가 퇴진 등 경영진 교체를 요구해 온 행동주의 펀드 그레이스홀딩스(KCGI)가 최근까지도 한진칼 지분을 늘리며 경영권 공세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빅딜’ 가능성도 점친다. 유족이 상속받는 한진칼 지분을 처분해 상속세를 납부하고, 대신 주요 주주와 빅딜을 통해 한진가는 임원 자리를 유지하면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는 식이다. 박광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상속 한진칼 지분을 처분하면 경영권을 내놔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며 “여론의 공격에 지쳐 상속을 포기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보다 사정이 더욱 다급하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유동성 부족에 시달려온 아시아나항공의 위기는 급기야 그룹 총수의 퇴진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28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부실 문제가 불거진 아시아나항공의 회계감사 사태의 책임을 지고 퇴진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말 부채비율은 649%(연결기준)에 이른다. 올해 도입된 새 리스회계기준(IFRS16)에 따라 항공기 금융·운용리스가 모두 부채로 잡히면 부채비율이 1000%에 육박한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특히 당장 올해 갚아야 할 부채 규모가 1조7000여 억원이나 된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박 전 회장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가족이 보유하고 있는 금호고속 지분 전량을 담보로 내놓는 조건으로 5000억원의 유동성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배수의 진을 쳤지만 채권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금호그룹 측은 “박 전 회장 일가가 금호고속 지분을 바탕으로 ‘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유지해온 만큼 아시아나항공 정상화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의 알짜 계열사를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아시아나항공이 지분 44.17%를 갖고 있는 에어부산이나 또 다른 저비용항공사인 에어서울, 박 전 회장의 아들인 박세창 사장이 이끌고 있는 아시아나IDT 등이 주요 매각 대상으로 거론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갚아야 할 부채가 계속 돌아오고 있기 때문에 오로지 사느냐 죽느냐를 놓고 결정해야 할 단계”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아시아나항공 매각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SK그룹·CJ그룹·신세계 등이 잠재적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