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닥터 열전] 윤태진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외과 교수
기초의학자 선친 영향 흉부외과 전문의 돼
부친은 연탄가스 중독 치료 유명
어린 시절 놀이터였던 의대 진학
고난도 복합심장기형 수술 5000건
국내 첫 하이브리드 수술 성공도
팀플레이 잘 돌아가야 최상의 결과
나홀로 명의 아닌 ‘명팀’ 리더 보람
윤 교수는 2003년 캐나다 토론토 아동병원으로 연수를 떠났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아동병원에서 한국인 최초로 임상 전임의를 지냈다. “우리의 의료 수준이 부족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자극을 받아 연구와 진료에 더 몰두했어요.”
그의 주전공은 선천성 복합심장기형. 여러 가지 심장기형을 한꺼번에 갖고 태어난 경우다. 이런 환자는 한 번이 아닌 2~3차례에 걸쳐 수술한다. 그는 지금껏 5000건 가량의 고난도 수술을 집도했다. 그래서 윤 교수의 이력에 ‘최초’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2006년에는 국내 최초로 하이브리드 소아 심장 수술에 성공했다. 세 가지 수술 기법을 동시에 사용해 고위험 심장기형 환아를 치료했다. 지난해에는 환자의 실제 심장과 똑같은 크기와 구조로 만든 3D 프린팅 모형을 수술 시뮬레이션에 활용했다. 3D 프린팅을 활용한 의료기술로는 처음으로 보건복지부 ‘신의료기술’에 선정됐다.
한국의 소아 심장 치료 기술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다. 지난해 서울아산병원의 소아 심장 수술 사망률은 1% 미만이었다. 윤 교수는 “미국·유럽·일본과 견줘봐도 앞선 수치”라고 평가했다.
소아 심장 치료의 질(質)은 시스템이 좌우한다. 그가 이끄는 선천성심장병센터는 산부인과와 협력해 환아가 태어나기 전부터 관리를 시작한다. 태어난 뒤에는 전문간호사의 홈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가동해 환아 상태를 수시로 체크한다. 수술은 소아심장외과·소아영상의학과·소아마취과 등 관련 전문가들이 함께 세운 치료 전략을 따른다. 수술 후에는 중환자실 전담 교수가 환아를 집중적으로 돌본다. 윤 교수는 “우리 팀에서 매년 550여 건의 수술을 한다. 최상의 치료 시스템을 구축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그는 건강하게 성장한 환자를 볼 때 보람을 느낀단다. 10여 년 전 한 남학생이 그의 진료실에 왔다. 고3 수험생이었는데 대입 면접을 보러 가다가 대학 문턱에서 발길을 돌렸다. 숨이 차서 학교 언덕길을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는 ‘엡스타인 기형’. 우측 심장 판막 가운데 하나인 삼첨판막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윤 교수에게 수술을 받은 후 남학생은 건강을 되찾았다. 이듬해 입시를 다시 치르고 의대에 입학했다. “그 학생이 내과 의사가 돼 진료실을 다시 찾아왔더군요. 너무 반갑고 대견했어요.”
고난도 선천성 심장병, 매년 550건 수술
윤 교수는 최정상급 의료란 개인의 역량이 아닌 체계적인 치료 시스템을 갖춘 팀플레이에서 나온다는 신념이 있다. 그는 “좋은 리더는 시스템을 만들고 이기적인 리더는 혼자 돋보이는 명의가 된다”며 “지난 10년간 소아 심장 수술 분야를 이끌면서 좋은 치료 시스템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 게 보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명의’라는 수식어를 거부한다. 그보다는 좋은 시스템을 갖춘 명팀의 리더이길 바란다.
“복잡한 심장병이 있는 아기를 치료하는 건 마치 숨은그림찾기나 난해한 퍼즐 맞추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하나 쉽고 간단하게 판단할 수 없죠. 여러 전문가가 함께 장시간 토론하고 골몰해야 최상의 결과가 나옵니다. 사람은 지쳐도 시스템은 지치지 않아요. 제가 ‘명의’라는 단어를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윤태진 1964년생. 서울대 의학 학·석사(1982~1992). 캐나다 토론토 아동병원 임상 전임의(2003~2004),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교수,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과장, 선천성심장병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