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에 무릎을 친 건 또 다른 이유 때문이다. 이 나라의 오너인 국민들 역시 마찬가지겠다 싶어서였다. 국민만큼 욕심 많고 의심 잘하고 쉽게 마음 바꾸는 존재가 또 어디 있겠나 말이다.
욕심·의심·변심이란 세 가지 마음
국가의 오너인 국민도 마찬가지
양극단의 큰 목청에서 벗어나야
중도 다수의 변심 막는 게 숙제
쉽지 않다는 건 국민들도 안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도 그래서다. 자신이 일을 맡긴 마름들이 흔히 책임을 다하지 않을 수 있으며 쉬이 부패하고 이내 독불장군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기에 결코 완전한 믿음을 주지 않는다. 흔히 초기의 높은 지지율을 믿음이라 착각하지만, 그것은 그저 ‘잘하라’는 기대의 또 다른 표현일 따름이다. 그러다 잘못이 나오고 반복되다 더 이상 용인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가차없이 오너의 마지막 마음이 나오는 것이다. 변심 말이다.
착각은 양방향이다. 위정자들 또한 착각에 빠진다. 초기의 높은 지지율에 도취해 벼랑 끝을 걸으면서도 추락의 위험을 느끼지 못한다. 경고를 한두 번 무시하다 보면 간은 점점 더 커진다. 조지 버나드 쇼의 명언처럼 “부끄러운 짓을 할 때마다 그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목청을 높이는 어리석은 인간들”의 목소리가 따라 커진다.
정부와 여당이 하는 짓이 딱 그렇다. 인사(人事)고 정책이고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되는 것도 없다. 경제는 차갑게 식고 일자리는 사라지며, 미세먼지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그나마 기대했던 북핵 문제마저 ‘과속’과 ‘일방통행’을 경고했던 우려들이 맞아떨어져가고 있다. 참사에 가까운 인사는 현 정부의 인재풀이 그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한다. 그런데도 이처럼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수 있는 건 그런 착각이 없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다.
지금 이 나라의 오너들은 서서히 변심을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긍정 평가보다 부정 평가가 높은 데드크로스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도 착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건 결코 변심하지 않는 양극단을 믿는 까닭이다. 그들의 큰 목청에 가린 탓이다.
하지만 결국 선택은 그들이 하는 게 아니다. 최종결정권을 쥐고 있는 건 가운데 회색지대에서 소리 없이 불안해하고 있는 중도의 다수들이다. 누구보다도 욕심 많고 의심도 많은 사람들이다. 누구보다도 쉽게 변심할 수 있는 진짜 오너들이다. 3년 전 이들의 변심으로 길에서 지갑 줍듯 얻은 게 현 정권임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변심으로 기울면 이 정권에도 해법은 없다. 오너가 변심했는데 마름이 짐을 싸지 않고 뭘 할 수 있겠나 말이다. 그들의 불안을 해소하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처절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진실의 순간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이훈범 대기자/중앙콘텐트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