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에 살아보니
간만에 마당을 살피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잡초다. 구석구석, 모진 겨울을 견뎌낸 잡초가 파릇파릇하다. 화초는 초라하게 웅크리고 있는데 잡초는 줄기차게 뻗어 있다. 나훈아 선생에게는 미안하지만 잡초 땜에 살 수가 없다. 노랫말처럼 이것저것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잡초가 아니다. 손도 있고 발도 있다. 이 구석 저 구석 옮겨 다니며 뿌리를 내린다. 잡초를 두고 ‘약효가 검증되지 못한 약초’라며 옹호하는 사람도 있다. 잡초 비빔밥까지 판매되는 세상, 한때는 잡초와 친해지려고 노력해 봤다. 그러나 마당을 무자비하게 잠식해 가는 잡초를 바라보니 적의감에 주먹까지 불끈해진다. 잡초와 친구 되기, 참으로 어려운 숙제다.
무자비한 잡초 번식력에 적의감
마당 있는 집에 살려면 통과의례
밤 사이 누군가 차고 앞에 주차
이른 새벽 외출 길 ‘미치고 폴딱’
이런 어려움에도 인생 최고 선택
‘어머니 자연’ 위대함 느끼게 해줘
저항의 상징 ‘민들레’ 파내기 마음 불편
일제 강점기 우리말을 지키려던 선각자들을 그린 영화 ‘말모이’에서도 민들레는 자주 등장한다. 민들레를 가만히 보면 밟아 보라는 듯 빤히 쳐다보는 것 같다. 우리 세대는 박노해의 시에 곡을 붙인 ‘민들레처럼’ 이란 노래를 한때 열심히 불렀다. “민들레꽃처럼 살아야 한다/ 중략/ 무수한 발길에 짓밟힌대도/ 민들레처럼//중략/ 온몸 부딪히며 살아야 한다/ 민들레처럼// 특별하지 않을지라도/ 결코 빛나지 않을지라도/ 흔하고 너른 들풀과 어우러져” 그 시절 생각에 잠시 가슴이 먹먹해지다가도 뽑을 생각을 하면 갑갑해져 온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마당이 있는 집에 살려면 춘삼월에 마땅히 치러야 할 통과의례다.
부지런한 잡초와는 달리 새소리는 아직 뜸하다. 늦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지절대던 새들도 이른 봄에는 보기 어렵다. 정원에 먹을 것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사과로 새먹이를 만들어 감나무에 달았다. 서양에서는 ‘애플 피더(apple feeder)’ 라고 해서 이른 봄, 과일로 만든 새먹이를 나무에 매달아 놓는다. 우리로 치면 까치밥인 셈이다. 유학시절 현지인 집에서 본 것을 따라 해 봤지만 토종새라 그런지 쪼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아내에겐 미안 ‘기처가’로 벌벌 떨며 살아
연재 첫 회가 나간 뒤 많은 질문을 받았다. 그리 고통스러워하면서 왜 단독에 사느냐고? 소이부답(笑而不答), 이백의 시구가 제격이지만 조금 더 보탠다. 필자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막내이자 386세대의 맏이다. 우리 세대의 경우 대개 시골에서 자라 인근 대도시에서 중·고교를 다닌 뒤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다. 대학시절에는 하숙이나 자취를 했으며 결혼하면서 아파트에 살게 된다. 르 코르뷔지에와 알랭 드 보통은 집을 두고 “영혼을 다독이는 공간”이라고 근사하게 정의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아파트는 재산증식 수단과 욕망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강남 요지의 아파트에서 살다가 단독으로 이사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결정이자 아내에게는 최악의 결과였다. 덕분에 아내의 목소리만 들어도 기절한다는 ‘기처가’로 벌벌 기며 살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마당이 있는 집은 당연히 “영혼을 위무하는 공간”이 된다. 인간에게 ‘어머니 자연(mother nature)’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그대 앞에 봄이 왔다. 앵두나무 새순 사이로 여린 봄 햇살이 뭉텅뭉텅 쏟아지고 있다.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다. 고려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졸업. 매체경영학 박사. KDI 연구위원, 영화진흥위원, EBS 이사, 공기업 경영평가위원 등을 역임했다. 에세이가 고교 교과서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