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당근 꺼낸 트럼프, 불신 해소 강조한 김정은

중앙일보

입력 2019.02.28 00:06

수정 2019.02.28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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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260일 만인 27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재회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상대를 향해 유인구를 던졌다.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악수한 뒤 헤어졌던 두 정상은 이날 만남에서 일제히 ‘나는 준비됐다’는 식으로 서로에게 알렸다. 이날 저녁 단독회담을 시작하면서 내놓은 모두발언에서다.  

북·미 실무협상 기대에 못 미친듯
볼턴 “이틀 동안 할 일 많다” 언급
영변·금강산 줄다리기 협상 시사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가장 절실해 하는 경제 문제를 공개적으로 꺼냈다. “무한한 경제 잠재력이 있다”고 치켜세웠다. 이는 비핵화에 나설 경우 무한한 경제 발전을 이룬다고 전제한 설득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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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김 위원장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표현을 썼다. 미국의 가장 큰 의구심은 북한이 과연 비핵화 의지가 있는가다. 이에 대해 ‘있으니 믿으라’고 답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미국 내 북한에 대한 ‘불신 해소’를 강조했다. “불신과 오해의 적대적인 낡은 관행이 우리가 가는 길을 막으려 했다”는 표현이 그렇다. 반면에 트럼프 대통령은 “1차 회담 이상으로 성공적이고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1차 회담 때 비핵화 합의가 미진했던 만큼 이번엔 진전시켜야 한다는 요구로 풀이된다.
 
양 정상이 시작부터 탐색전을 펼친 건 회담을 앞두고 진행했던 실무협상 결과가 각자의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현지 소식통은 북·미가 지난 21일부터 최소 19시간 동안 만나 실무협상을 벌였으나 핵심 쟁점인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상응조치와 관련해선 최종적인 도장을 찍지 못했다고 이날 전했다.  


이 소식통은 “북한은 비핵화 의지를 강조하면서 미 측에 ‘(비핵화) 프로세스도 준비했다’고 알렸다”며 “그러면서 미국의 완전한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는 제재 해제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여 최종 조율이 쉽지 않았다”는 소식통의 전언이다.  
 
그에 따르면 실무협상에선 비핵화 문제를 다룰 워킹그룹 설치와 적대관계 종식을 위한 종전선언 또는 평화선언 및 미군 유해 발굴 추진에 쉽게 뜻을 모았지만 비핵화 범위와 수준을 놓곤 이견이 분명했다고 한다.
 
북·미는 이에 따라 비핵화 분야에서 ‘+알파(α)’로 불리는 추가적인 부분은 정상회담으로 넘겨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직접 담판을 짓도록 했다는 전언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노출을 자제했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날 “이틀 동안 할 일이 많다”고 밝힌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미국이 요구하는 영변 핵시설 외의 비핵화와, 북한이 요구하는 금강산 관광 재개를 넘어서는 제재 해제가 양측의 ‘+α’다.  
 
북한이 27일 만찬 당일에 이용호 외무상을 참석자로 선정한 것도 회담 상황을 반영한다는 평가다. 백악관은 전날 만찬 성격을 “친교(social)”라고 발표하면서 참석자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및 비핵화 협상과는 인연이 없는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을 선정했다. 그러나 북한은 27일 사실상의 비서실장격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아니라 미국과 국제사회의 비핵화 압박을 막는 데 잔뼈가 굵은 이용호를 낙점했다. 형식적으로는 친교지만 내용상으로는 ‘+α’를 향한 배수의 진인 셈이다.  
 
특히 올해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고 강조했던 김 위원장은 만찬에서 ‘제재 해제’를 요구했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에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추구하는 ‘번영’을 미끼로 비핵화 결단을 요구했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온라인 매체인 VOX는 26일(현지시간) 북한과 미국이 실무협상에서 ▶종전선언 추진 ▶북한 지역의 유해 송환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구체 조치(연락사무소) ▶영변 핵 단지 생산 중단(동결)과 남북 경협 문제 협의를 골자로 하는 합의문 초안은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현재로선 유해 송환은 확정이나 마찬가지다. 종전선언 추진도 실무선에선 거의 합의됐다. 문제는 영변과 남북 경협 즉 금강산 관광 재개다. 연락사무소 문제도 이게 어떻게 정리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이 핵심 현안이 두 정상의 담판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하노이=정용수 기자, 정효식 특파원 nky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