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벤처와의 대화…‘쇼통’으로 끝나선 안 된다

중앙일보

입력 2019.02.0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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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1세대 벤처 창업가와 국내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 대표와 만났다. 기업인 7명만 초청한 조촐한 자리이다 보니 기대 이상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는 “국내 기업에만 적용하는 법안(규제) 탓에 글로벌 기업이 한국에서 혜택을 받는다”며 역차별 문제를 제기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정부 지원책이 있을 때마다 시장경제 왜곡을 우려한다”며 “정부가 스마트해지면 좋겠다”고 비판했다.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에 오른 비바리퍼플리카 이승건 대표 역시 “규제가 워낙 많아 외국 투자자에게 설명하기 어렵다”며 콕 집어 주 52시간 관련 부작용을 예로 들었다. 그는 “(정책) 취지는 알겠지만 급격히 성장하는 기업에 주 52시간은 또 하나의 규제”라며 현장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비단 벤처 창업가 입을 통해 듣지 않더라도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고 걱정해온 문제들이다. 대통령 앞에서 이런 얘기가 오간 것만으로도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긴 하지만 현안이 곧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높지 않다. 문 대통령이 최근 기업인들을 잇달아 만나며 친기업 행보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말과 행동의 간극이 커 번번이 실망했던 경험 탓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청와대 인식 또 드러나
이제라도 현장 목소리를 정책에 담아야

문 대통령은 이날도 현장의 어려움을 외면한 동떨어진 발언들을 또 했다. 모두발언에서 “정부의 정책적 노력의 결과로 지난해 신설 법인 수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벤처 투자액과 중소기업 수출액 모두 사상 최고를 기록하는 등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 현실과 상당한 괴리가 있는 인식이다. 실상은 전 세계의 유니콘 기업 311개 가운데 한국 기업은 6곳에 불과하다. 글로벌 무대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미국과 중국이 각각 151개와 85개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다. 기업가치를 따지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국내 1호 유니콘 기업이자 가장 덩치가 큰 쿠팡이 10조원에 겨우 턱걸이한 사이 뉴스 앱 터우티아오를 서비스하는 중국 바이트댄스는 창업 7년 만에 750억 달러(84조 6750억원)로 성장해 기업가치 1위 기업에 올랐다. 더 큰 문제는 벤처업계 전반의 성장 속도다. 불과 5년 전 45개였던 전 세계 유니콘 기업이 311개로 늘어나는 동안 한국은 고작 5개가 더 늘었을 뿐이다.
 
문 대통령 말처럼 정부 정책의 성과로 벤처기업이 성장했다기보다 정부가 발목을 잡아 성장을 막고 있다고 보는 게 더 옳다. 실제로 김범석 쿠팡 대표는 “외자 유치가 필요한데 그걸 막는 게 불확실성”이라며 “규제의 폭과 해석이 자주 바뀌는 게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도 “창업주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경영할 수 있도록 살펴봐 달라”며 에둘러 불확실성을 없애달라고 호소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명쾌한 약속은커녕 “한국에 대한 불확실성은 한반도 리스크인데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으니 자신 있게 기업활동을 해달라”며 핵심을 벗어난 설명으로 일관했다. 이러니 지난 두 차례의 ‘기업인과 대화’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쇼통(쇼+소통)’을 위해 기업인들을 병풍 삼은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게 아닌가. 아무리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도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친다는 것을 청와대는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