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말 신임 관장 후보가 3명으로 좁혀졌다. 김홍희(71) 전 서울시립미술관장, 윤범모(68) 동국대 석좌교수, 이용우(67) 전 광주비엔날레 재단 대표, 모두 미술계의 유명인사다. 그러나 윤 교수는 다소 의외였는데, 미술평론가로서 활약이 많지만 기관장 경험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이때부터 ‘정부가 민중미술 지지자인 윤 교수를 점찍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어차피 객관적 검증단계인 고위공무원 역량평가가 있으니까, 더 지켜보기로 했다. 아시아 최대 미술관을 경영할 수 있는지 거기서 가려질 것이고, 평가 통과자 중에 좀 더 정부 코드에 맞는 인사를 고르는 것까지 뭐라 하기는 힘들 테니까. 설마 역량이 검증되지 않았는데 코드가 맞는다고 기관장에 앉히는 ‘화이트리스트’ 행태를, 전 정부의 ‘블랙리스트 적폐’를 끝없이 외쳐온 현 정부에서 대놓고 하랴 싶었다.
그런데 그게 정말 일어날 줄이야. 12월 초 문체부가 최종 후보 3명에 대해 역량평가를 면제해줄 것을 인사혁신처에 요청한 것이다. 역량평가가 면제될 경우 누가 가장 유리할지는 뻔했다. 언론에 보도되면서 비난이 빗발치자, 문체부는 면제 요청을 철회했다. 그 후 역량평가는 12월 말 치러졌는데, 기준점수 2.5를 넘겨 통과한 사람은 이용우 후보뿐이었다. 유일한 합격자가 바로 새 관장으로 임명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발표가 한 달 넘게 미뤄지더니, 떨어졌던 두 후보에게 재시험을 치르게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규정상 재시험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전례도 없고 합당한 이유도 없었다. 재시험을 치른 두 사람은 모두 통과했고, 문체부는 명절 연휴 직전 날에 윤범모 후보를 신임 관장으로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이제 문체부에게 묻고 싶어진다. 이런 식으로 관장 선임을 해서 세우려는 “한국미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정부가 바뀔 때마다 바뀌는 입맛의 미술? 또는, 내로남불의 미학? 또는, 시험보다 인맥이 최고라는 비통한 리얼리즘?
문소영 코리아 중앙데일리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