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인사이드피치] 스프링캠프의 경제학
스프링캠프는 정규시즌에 앞서 기량을 끌어올리고 서로의 호흡을 맞추는 기간이다. 팀으로 보면 수비 포메이션을 비롯한 각종 전술을 익숙하게 하고 팀 케미스트리를 가다듬는 시기다. 또 신인 선수나 스토브리그에서 팀을 옮겨온 선수들이 기존 선수들과 팀워크를 다지는 것도 중요하다.
MLB는 자몽·선인장 리그 만들어
야구 갈증 풀어주고 흥행도 성공
한국, 2월부터 그들만의 해외 캠프
10개구단 합쳐 매년 150억원 지출
폐쇄적 운영으로 수익 기회 날려
팬 접근 쉽게 하고 콘텐트 상품화를
메이저리그에서 시작된 스프링캠프의 유래는 18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카고 화이트스타킹스(시카고 컵스의 전신)가 홈구장이 아닌 별도의 장소에서 팀 단체훈련을 시작한 것이 출발점이 됐다. 그해 시카고보다 날씨가 따뜻한 아칸소 핫스프링스에서 먼저 손발을 맞춘 화이트스타킹스는 정규시즌에서 90승 34패(승률 0.726)라는 월등한 성적으로 리그 1위를 기록했다. 그러자 다른 팀들도 하나둘씩 시즌에 앞서 플로리다·캘리포니아·애리조나·아칸소 등 날씨가 좋은 곳을 찾아 손발을 맞추기 시작했다.
MLB 스프링캠프는 ‘신상품’ 경연장
1948년 브루클린 다저스 단장 브랜치 리키는 플로리다 베로비치에 아예 선수들이 먹고 자면서 훈련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다. 1985년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팀 최초로 미국 전지훈련을 시작한 곳이며 2018 한국시리즈 챔피언 SK가 올해도 캠프를 진행하는 그 시설이다.
그런 장소가 만들어지면서 캘리포니아, 아칸소 등에서 훈련하던 팀들이 애리조나와 플로리다로 모였다. 1960년대 리그가 확장되어 팀이 늘어날 때는 신생팀은 자연스럽게 애리조나 또는 플로리다의 지자체와 협력해 그 스프링캠프로 합류했다. 그렇게 지금의 자몽(Greatfruit, 플로리다)리그, 선인장(Cactus, 애리조나)리그로 불리는 스프링캠프 양대 리그가 구조화되었다.
1982년 출범한 한국프로야구는 이듬해 OB 베어스를 비롯한 4팀이 해외 전지훈련을 시작했다. 당시 베어스는 대만 가오슝에서 1차 캠프를 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후쿠오카, 미야자키에서 일본팀을 상대로 경기를 치르며 시즌을 준비했다. 삼성·해태·롯데도 비슷한 패턴의 일본 전지훈련을 실시했다. 이후 84년 괌(롯데), 85년 미국 플로리다(삼성) 등 새로운 곳에 캠프가 차려졌다.
한국프로야구는 초창기에 실업야구 문화와 일본야구 출신 지도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메이저리그처럼 캠프의 성격과 문화를 사업적 흥행이나 팬 관점을 중요시하는 쪽으로 삼지 않았다. ‘다른 구단보다 좋은 조건에서 질 좋은 훈련을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배타적인 경쟁의 연장으로 인식했다. 한때 모 구단 전지훈련장 철망형 펜스에는 축구대표팀 비공개 훈련에서나 볼 수 있는 가림막이 설치되기도 했다. 다른 팀에 비해 더 효과적인 훈련을 하기 위해서는 뭉쳐서 어울리기보다는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좋다는 인식이 주를 이뤘다.
이정후·강백호 등 스타 보고 싶은 팬심 외면
해외 캠프에는 돈이 많이 든다. 팀마다 매년 전지훈련 비용으로 15억원 정도를 쓴다. 50명 안팎의 선수단 항공료, 숙식비용, 훈련장소 임대료 등이 포함돼 있다. 외국에서 훈련이 진행되다 보니 선수단 경비 이외의 다른 부대비용도 현지에서 지불할 수밖에 없다. 선수단이 휴식시간에 여가를 보내거나 쇼핑을 해도 마찬가지다.
구단 입장에서 더 안타까운 현실은 캠프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이 없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열성 팬들이 현지까지 찾아가서 선수들의 훈련 모습과 경기를 볼 수 있는 여행상품 정도다. 야구가 직업인 선수와 야구로 돈을 벌어야 할 구단들이 야구를 하기 위해 돈을 쓰기만 하고 벌지는 못하는 현실이다. 프로야구 사업자인 구단이 연간 15억씩, 리그 차원으로 보면 150억을 매년 수입이라고는 전혀 없이 비용으로만 지출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사업적, 산업적 관점과는 아직 거리가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팬들이 그 스프링캠프를 쉽게 즐기지 못하는 것도 안타까운 대목이다. 겨우내 기다려온 스타 플레이어들의 모습을 직접 만나는 것은 고사하고 그 경기도 실시간으로 보기 힘들다. 구단끼리 합의로 일정을 만들어 팬에게 알려지는 소통의 과정도 제각각이라 팬들이 그 정보를 얻는 과정도 일정하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할까. 스프링캠프에 대한 개념과 인식을 바꾸는 것부터 필요해 보인다. ‘훈련’보다는 ‘또 하나의 시즌’으로 캠프의 관점을 정립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2, 3월의 프로야구 사업’으로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메이저리그가 70년 전 그런 인식을 갖고 흥행사업으로서의 캠프를 시작했다면, 우리 프로야구는 70년 뒤에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방향성을 갖고 시작해야 언젠가 가능해진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켈로그경영대학원의 석좌교수 필립 코틀러는 그의 저서 『스포츠 팬을 잡아라(The Elusive Fan)』에서 “스포츠 조직들은 자신을 콘텐트 제공자이자 미디어센터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프로야구가 팬과의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콘텐트 제공자로서 사업적 가능성을 펼쳐 내려면 현재의 폐쇄적 스프링캠프를 어떻게 팬 친화적이고 사업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지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를 거쳐 인터넷 네이버 스포츠실장을 지냈다.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대표이사로 7년간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