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시시각각] 대학가는 젠더전쟁 중

중앙일보

입력 2019.01.1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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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 논설위원

“너 정도면 괜찮은 얼굴”이라는 발언이 사달이었다. 서강대 18학번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이런 말을 했다가 단과대 학생회에 회부됐다. 언어 성폭력(외모품평)으로, 학부 섹션(과·반)·학회 내 공식 활동 참여 금지 등의 징계가 내려졌다. 과도한 징계라며 남학생들이 반발했다. 논란이 커지자 학생회는 일부 절차의 오류를 인정하며 사과했다.
 
대학가의 젠더 갈등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페미니즘 특강 개최나 총여학생회 존속·폐지를 둘러싼 갈등은 기본이다. 지난해 미투와 영 페미니스트(20대 여성) 중심의 페미니즘 열풍, 그에 대한 백래시(반동)에 이어 최근에는 20대 남성들의 반발이 가시화되고 있다. 정부의 ‘친여성적’(?) 행보가 20대 남성들의 대통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2월 한 여론조사에서도 20대 남성에서 페미니즘 반대가 제일 높았다(공공의창·리얼미터 조사). 연령과 성을 아울러 전체적으로 페미니즘 지지와 반대는 41.5% 대 40.2%로 팽팽했는데 20대 남성에서는 지지 14.1%, 반대 75.9%였다.

날로 심화되는 20대 젠더갈등
기성세대는 무엇을 해야 할까

20대 남성들은 우리가 왜 가해자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20대 여성들이 자신이 직접 겪지는 않아도 디지털 성범죄나 독박육아, 경력단절 등을 내 문제로 여기며 성차별로 인식하는 것과 반대다. 20대 남성들은, 나는 아직 아버지 같은 가부장적 기득권을 누려본 적 없고, 아버지 때와 달리 여학생들이 공부도 더 잘하고 취업도 불리할 게 없다고 항변한다. 그들 눈에는 한국 사회 자체가 남성중심적으로 굴러가는 것은 잘 안보인다.
 
극심한 젠더 갈등은 대학가의 연애와 성 풍속도마저 바꾸고 있다. 한 50대 대학교수는 “요즘 대학에서는 남녀 갈등이 심하니 차라리 동성끼리 어울려 지내고, 성적 취향에 문제 없는데도 연애와 섹스에 담 쌓고 지내는 학생들이 많다”고 전했다. 물론 대학가의 연애와 성 문화는 양극화돼서 일각에는 아주 개방적인 부류도 있다.
 
일부 여대생들은 가부장적 구조와 남성중심적 가족제도의 타파를 위해 ‘3비’ 선언을 하기도 한다. ‘비연애· 비혼· 비출산’이다. 남대생들은 남녀평등이라면서 왜 데이트 비용이나 혼수 집 장만은 남자 몫인가 불만이다. 사랑할 때도 혹시 상대가 몰래 동영상을 찍는 건 아닐까, 혹시 나중에 폭력이라고 하는 건 아닐까, 서로 불안해한다. 온라인 관계에는 능하나 오프라인 관계에는 취약하고, 현실 관계에서 오는 상처와 책임감은 피하고 싶어하는 디지털 세대의 특수성이 더해진다. 피가 뜨거운 청춘남녀지만, 팬질이니 덕질이니 몰입하며 유사연애 체험을 할 수 있는 길은 남녀불문 열려 있으니 크게 외로울 일도 없다.


1980년대 대학생들은 우리 사회가 학교에서 배운 민주사회가 아니란 걸 깨닫고 거리에서 돌을 던졌다. 그들의 자녀들인 2010년대 대학생들은 우리 사회가 학교나 집에서 가르친 것처럼 성 평등하지 않고 양성화합도 허구란 걸 깨닫고는 댓글 전쟁을 벌인다. 586 민주화 세대가 성 평등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자녀에게 고스란히 넘겨준 탓이다. 거기에 취업난, 경기침체 등 악화된 사회경제적 불안이 젠더 갈등을 더 부추긴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의 말대로 “20대가 사회적 좌절을 상대 성에게 투사하고 서로 피해자라고 주장하면서 분단 갈등보다 더한 젠더 전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는 “대학가의 갈등이 증폭돼 보이지만 오히려 열린 공간이기 때문에 문제가 가시화되고 답을 찾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침묵하는 곳이 더 문제”라고 분석했다. 동감이다. 딸과 아들들의 젠더 전쟁은 당혹스럽고 안타깝지만, 되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다. 이제는 부모세대가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다. 단 ‘꼰대짓’ 말고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