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교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워싱턴포스트(WP)의 지난 16일(현지시간) 보도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두 번째 회담 장소로 거론되고 있는 다낭은 어떤 곳일까요.
다낭, 1600년 역사 ‘참파왕국’의 흔적 남은 곳
프랑스 식민지배 받아 ‘투란’이라 불리기도
베트남 파병 한국군 ‘청룡부대’ 주둔지
하지만 후에와 호이안 못지않게 다낭 역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베트남 소수민족인 참족의 언어로 ‘큰 강의 입구’라는 의미를 지닌 다낭은 무려 1600여년 동안 베트남 중남부를 지배한 참파왕국(Champa·192~1832년)이 있던 곳입니다. 당시 참파왕국은 인도 힌두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여전히 다낭에선 이국적인 유적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참파왕국이 무너진 후에도 다낭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군사적 요충지로 활용되곤 했기 때문이죠. 1858년 프랑스 나폴레옹 3세가 베트남을 식민지화할 때 처음 프랑스군이 침략했던 곳이 바로 다낭이었습니다. 당시 이 도시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한 도시로서 ‘투란’(Tourane)이라고 불렸는데요. 그래서 아직까지도 다낭에 위치한 호텔 등은 투란이란 옛 지명을 사용하고 있고, 또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고딕양식의 ‘다낭 대성당’은 이 도시의 대표 관광지이자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베트남 전쟁(1960~1975년) 때도 다낭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65년 미군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할 때도 다낭항을 통해 상륙했고 이곳을 공군기지로 삼았습니다.
게다가 이 도시는 한국과도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베트남전쟁 당시 파병 갔던 해병 제2여단인 ‘청룡부대’가 주둔했던 곳도 바로 다낭이기 때문이죠. 1965년 10월 베트남에 처음 상륙한 청룡부대는 1971년 12월까지 현지에 주둔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베트남전을 그린 안정효 작가의 소설『하얀 전쟁』과 황석영 작가의『무기의 그늘』은 모두 다낭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1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을 당시 김정은 위원장은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이수용 노동당 국제담당 부위원장 등 핵심 인사들과 함께 싱가포르의 유명 관광지인 ‘마리나베이샌드 타워3’, 식물원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등을 깜짝 방문하고 셀카를 찍기도 했는데요. 그 당시를 생각해보면 김 위원장이 북한의 롤모델로도 언급되는 베트남의 경제발전 계획 ‘도이모이’(Doi Moi)의 결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엔 다낭보단 하노이가 더 적합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아직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2차 정상회담의 시기와 장소가 조율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로이터는 이 사안과 관련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2월 4~8일 이후 베트남을 국빈 방문할 예정”이라고 17일 보도했습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