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모든 서비스에는 비용이 든다. 이미 제로페이 구축에 39억원, 서울시가 홍보에 쓴 돈만 30억원이 넘는다. 제로페이도 연매출 8억~12억원은 0.3%, 12억원 초과는 0.5%의 수수료를 물린다지만 매년 35억원이 드는 운영비나 뽑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 큰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이다. QR 코드를 이용한 결제는 소비자의 은행 계좌에서 사업자의 계좌로 실시간 이체하는 개념이다. 당연히 이체수수료가 든다. 하지만 제로페이 참여 은행들은 이 수수료를 거의 면제하기로 했다. 서울시 소상공인 66만 곳에서 제로페이가 주요 결제수단으로 대체될 경우 시중은행이 포기하는 수수료는 매년 76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미 지난해 말 정부의 수수료 인하 정책으로 카드사들의 수익은 1조4000억원 줄어들 전망이다. 금융지주사들은 자회사인 카드사의 매출은 줄이고, 또 다른 자회사인 은행의 수수료를 포기하기로 결정한 셈이다. 어떻게 이런 ‘착한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제로페이가 이 땅에 정착하려면
신용카드보다 훨씬 편리하고
기존 페이보다 나은 구석 있어야
QR 코드를 활용한 모바일 결제는 중국에서 꽃을 피웠다. 식당, 호텔, 대중교통, 자판기, 노점상은 물론 결혼 축의금까지 QR 코드로 주고받는다. 중국 시장조사업체 애널리시스에 따르면 중국의 모바일 결제 비율은 2012년 4%에서 2017년 78.5%로 성장했다. 2004년 출시된 알리바바의 알리페이가 54%, 2014년 텐센트가 내놓은 위챗페이가 39%를 차지한다. 중국이 모바일 결제 천국이 된 것은 고질적인 위조지폐 문제에 신용카드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한 사정이 겹쳤기 때문이다. 아직도 보급률이 20% 수준인 신용카드를 건너뛰고 스마트폰 결제를 주력으로 삼은 것이다. 모바일이니 선진적이라는 말은 하지 말자. 그런 식으로 따지면 이동통신업체에 돈을 넣어놓고 문자메시지로 이체하는 케냐의 엠페사나 인도의 페이TM도 최첨단인가.
꿩 잡는 게 매다. 제로페이가 이 땅에 정착하려면 1억장이 깔린 신용카드보다 편리하고 그 신용카드와 연계해 이미 잘 쓰이는 삼성페이,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보다 나은 구석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정부와 지자체의 압력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지속가능성이라도 갖춰야 한다. 중국의 알리페이는 기본적으로 타오바오를 비롯한 자사 유통망이 뒷받침한다. 물건을 살 때 할부나 대출 서비스도 되고, 연계 계좌를 통해 머니마켓펀드(MMF)에 투자하거나 보험을 파는 등의 금융 서비스도 제공한다. 그깟 수수료는 안 받아도 그만이다. 괜히 알리페이 운영사인 앤트파이낸셜이 세계 최고의 핀테크 기업으로 꼽히는 것이 아니다. 일본 라쿠텐은 온라인 쇼핑, 여행, 인터넷 은행, 카드사 등을 함께 운영한다. 과연 정부는 제로페이에 금융과 유통 분야까지 사업영역을 개방해 줄 생각이 있는 것일까. 더 나아가 이리저리 얽힌 규제에 꼼짝 못하는 국내 금융·정보기술(IT) 업체들에도 자유로이 경쟁할 수 있는 마당을 열어주려는 것일까. 네이버 은행, 카카오 보험, 페이코 증권을 볼 날이 올까.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제로페이는 무엇에 쓰려는 물건인가.
김창우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