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30분. 경총은 “기업들이 생존 여부까지 걱정하는 절박한 경제 현실을 고려해 시행령 개정을 철회해달라”는 성명서를 냈다. 주휴 시간(유급으로 처리하는 휴무시간)을 최저임금에 포함하는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이 차관회의를 통과한 직후다. 개정된 시행령이 효력을 발휘하면 최저임금 기준시간에 주휴 시간도 포함된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 기준시간이 실제로 일한 시간(174시간)보다 최대 69시간까지 늘어나게 된다.
최저임금 시행령 개정을 계기로 경총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국세청 세무조사에도 재계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실제로 경총은 지난주에만 최저임금 관련 성명서를 3개나 내놨다. 이 단체는 지난 17일 "유급 휴일수당은 노동자의 근로 제공이 없어도 지급해야 하는 임금으로 (기업 입장에선) 그 자체가 강제 부담"이라며 "시행령 개정으로 최저임금 산정방식까지 불리하면 이중으로 억울하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자 고용노동부는 이튿날 "대법원 판례는 일관되게 근로자가 받은 임금과 일하는 시간이 상응해야 한다고 판결했다"며 "노동시장 혼란을 막고 최저임금법 취지에 맞게 주휴 시간을 포함한 시행령을 내년부터 당장 시행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에 경총은 19일 성명을 통해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고 실제 근로 시간만으로 최저임금을 산정하는 방식이 보다 단순하고 명확하다"며 "이번 사안은 시행령이 아닌 국회 입법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부회장은 "시행령 개정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정부가 기업들을 단속하고 처벌까지 할 수 있는 최저임금 산정기준에 실제 존재하지 않는 무노동 시간까지 자의적으로 포함해 과도한 단속 잣대를 만들었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법을 위반할 경우 징역이나 벌금이 부과되는 만큼 국회 입법을 통해 풀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총이 목소리를 내면서 최저임금 인상을 계기로 재계 대변인이 바뀌고 있다는 얘기가 일각에서 들린다. 전국경제인연합회로 대표되는 여의도 시대가 저물고 마포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는 최근 경총회관을 찾은 정부 관계자 면면을 보면 뚜렷하다. 올해 하반기 들어 장관급 인사의 경총회관 방문은 부쩍 늘어나고 있다. 지난 10월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을 시작으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성윤모 산업자원부 장관도 경총회관을 찾았다.
지난 21일에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경총회관을 방문했다. 공정거래위원장의 경총 방문은 49년 경총 역사상 처음이다. 이들의 방문 목적은 "법 개정을 앞두고 기업인들의 의견을 경청하겠다"로 압축된다. 그만큼 경총의 위상이 재계 목소리를 대표할 정도로 올라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총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경영계의 불만이 쌓이고 있었지만 분출할 통로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경영계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대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중하고 꼼꼼한 성격으로 알려진 손경식 경총 회장도 최저임금 이슈와 관련해선 정부를 향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손 회장은 지난 20일 서울 한 호텔에서 열린 경총포럼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께서도 최저임금 (속도를) 조정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고용부만 의견이 다른 것 같다"며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 차관회의 통과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용근 경총 부회장은 “시행령 개정이 아닌 국회 입법 과정을 통해 풀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