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오디세이] 창립 10주년 맞은 엄홍길휴먼재단
지난달 30일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엄홍길휴먼재단 창립 10주년 기념 후원의 밤이 열렸다. 전국에서 온 450여 명의 후원자가 자리를 꽉 채웠다. 엄홍길휴먼재단은 엄홍길 대장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08년 5월 만든 단체다. 2007년 5월 로체샤르에 올라 히말라야 8000m급 16좌를 완등한 엄 대장이 그해 말 파라다이스문화재단에서 받은 특별공로상 상금(5000만원)을 종자돈으로 냈다. 네팔 오지에 학교를 짓는 휴먼스쿨 사업은 2010년 팡보체를 시작으로 15개 지역에서 알찬 열매를 맺었다. 16번째 학교는 네팔 수도 카트만두 인근에 유치원-초·중·고-대학으로 이어지는 타운으로 만들 계획이다.
등반 중 숨진 셰르파 동네에 첫 학교
16번째 학교는 교육 타운 조성 추진
7000명 후원자들 힘으로 꿈 이뤄
오른 발목 못 굽히는 6급 장애인
산 오를 때 무리하면 절대 안 돼
네팔 인재 키우는 게 ‘인생 17좌’
해발 4000m 팡보체에 1호 휴먼스쿨
- 후원자들이 정말 많고도 다양하네요. 그 인맥을 어떻게 관리합니까.
- “하~. 혼자 산에 다니던 때가 그립습니다. 제 삶이 없어지고 모든 것이 재단 일로 연결됩니다. 하룻밤에 약속 몇 개를 소화하고, 제 얘기를 다룬 영화 ‘히말라야’는 여섯 번이나 봤어요. 한국 사회는 얼굴 보고 밥 먹고 해야 정이 생기는 법이잖아요.”
- ‘엄홍길’ 이름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텐데.
- “‘내 후원금이 꼭 필요한 곳에 쓰이는구나’ 하는 신뢰가 가장 중요합니다. 엄홍길재단은 약속을 지킨다, 확실히 다르다는 걸 인식시켜 줘야죠.”
- 네팔에서는 거의 신일 텐데 마음이 높아지지는 않았나요.
- “초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워낙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면서 네팔 사람이 다 됐어요. 휴먼스쿨 착공식이나 준공식 때 아이들과 부모들의 좋아하는 표정을 보면 후원금 모으고 일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갑니다. 좋은 기운을 받아서 더 열심히 하게 되죠.”
- 1호 휴먼스쿨(팡보체)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학교라면서요.
- “해발 4000m에 있는 팡보체는 에베레스트로 가는 관문입니다. 1986년 에베레스트 도전 때 셰르파였던 술딤 도르지가 사고로 숨졌습니다. 그가 살던 마을 팡보체엔 홀어머니와 결혼 3개월 된 아내만 남았어요. 그 곳을 거쳐 갈 때마다 그와 가족들이 떠올랐어요. 1호 휴먼스쿨은 당연히 팡보체에 지어야 했습니다.”
산은 알면 알수록 두려운 생명체
- 미국 유학 중인 딸이 아빠처럼 산을 좋아한다고 하던데 ‘나도 8000m급 올라갈래’ 하면?
- “딸은 적극적이고 모험심이 강해요. 히말라야 16좌 하고 싶다고 하면 강요는 하지 않겠지만 밀어줄 것 같습니다. 대신 등반에 필요한 노하우는 전수해 줘야죠.”
-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김창호 대장이 얼마 전 사고를 당했고, 박영석·김형일 대장도 2011년 목숨을 잃었는데요.
- “사실 저도 크레바스 속에 냉동인간 돼 있는 게 맞아요. 동료를 잃으면서도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새 생명을 히말라야 신이 내려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산은 알면 알수록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체로 보이고,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후배들의 도전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고, 저는 또 다른 가치를 설정해서 살고 있는 거죠.”
- 고산 등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전’과 ‘도전’은 양립할 수 없는 건가요.
- “도전하기 위해 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안전은 보장할 수 없는 겁니다. 다만 어느 정도 위험하냐는 정도의 문제가 있을 뿐이죠. 그래서 더 철저히 준비해야 하고, 절대 욕심을 내거나 무리수를 두면 안 됩니다.”
굵기 다른 장딴지 … 1998년 안나푸르나 정상 앞두고 욕심내다 사고
세 차례 안나푸르나 등정에 실패하고, 네 번째 갖은 고생 끝에 7600m 지점까지 올라왔다. 저 앞에 정상이 보였다. 다음날 아침 정상에 도전할 계획이었지만 엄 대장은 “드디어 정상이 보입니다. 한번에 치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라고 무전을 친 뒤 출발 30분 만에 사고를 당했다. “기침도 크게 못할 만큼 조심스럽고 겸손했던 제가 한 순간 마음을 놓은 겁니다. 결과는 참혹했죠”라고 그는 회고했다.
2006년 로체샤르 등정은 반대였다. 정상 150m를 남기고 날씨는 쾌청했고, 컨디션·장비 모두 완벽했다. 잠깐 쉬는 엄 대장의 얼굴로 찬바람이 쌩 불어왔다. 정신을 번쩍 차려 정상을 보니 도저히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엄 대장이 “안 되겠다. 철수다” 하자 함께 있던 동료와 베이스캠프는 난리가 났다. 그럼에도 엄 대장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 갔으면 눈사태로 다 죽었을 겁니다. 욕심은 등반가의 눈을 가립니다. 등반가 뿐만 아니겠죠.”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