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뮤지컬 세계화’ 선언한
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 대표
“천을 60장쯤 끊었어요. 우주인지 바다인지 모를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느낌을 보여주고 싶어서 작년 10월부터 계속 테스트하다 마침내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천을 발견했죠. 비행기 소재에 쓰이는 거라는데, 천만원도 넘게 주고 직수입했어요. 누구도 상상 못할 그림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웃는 남자’는 EMK뮤지컬컴퍼니의 두 번째 창작뮤지컬이다. 동방신기 출신 김준수를 캐스팅해 대박을 친 ‘모차르트!’를 비롯해 ‘엘리자벳’ ‘레베카’ 등 품격있는 빈뮤지컬로 틈새 시장을 개척한 EMK뮤지컬컴퍼니가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꿈을 담아냈다. 2016년 ‘마타하리’부터 이미 거대한 스케일의 미학을 내세웠다. 현재 개발 중인 신작도 3개가 넘는다. 내년 6월 개막 예정인 ‘엑스칼리버’, 2021년 빈뮤지컬 창작진을 기용한 ‘베토벤’, 2022년 온전히 한국 창작진의 힘으로 선보일 신작까지, 그야말로 ‘창작뮤지컬 총공세’에 나선 것이다.
“만드는 사람이 행복해야 하니까요. 라이선스는 남의 걸 빌려서 하다보니 스태프들이 임하는 자세가 달라요. 그동안 스몰 라이선스로 실력을 키웠으니 창작을 할 때가 된 거죠. 누구나 실력만 갖춰지면 자기 걸 하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김준수 뮤지컬 데뷔시켜 지각 변동
창작이지만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연출가 로버트 요한슨 등 외국 전문가들로 창작진을 꾸린 건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세계로 진출하려면 일단 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돌이 외국 곡 받아오는 것과 똑같은 원리죠. BTS도 국내보다 해외 시장에서 벌어오는 수익이 어마어마할 거에요. 그래도 2022년 쯤에는 한국 스태프로만 만들어볼려고 벌써 팀을 꾸렸어요. 한국 연출가가 만들고 영화까지 제작하는 계약이 조만간 마무리됩니다.”
그가 해외진출을 외치는 건 “국내 뮤지컬 시장 매출이 꼭대기까지 왔다”는 판단에서다. 경제 흐름이나 인구감소 면에서 정점을 찍었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은 관광객이 얼마나 많이 오느냐는 싸움이지만, 우리는 인구 대비로 여기가 정점인 거죠. 그러니 외국에 나가야 되요. 지금 국내는 대관료·광고·홍보·급여·개런티가 10년 전보다 40% 올랐는데, 매출이 그대로면 제작자가 다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죠. 흥행도 안된 걸 티켓 값부터 올릴 수도 없으니까요.”
뮤지컬의 본고장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가 있는 뉴욕과 런던에 곧 현지 법인을 오픈할 예정이다. “아시아 시장은 EMK에게 너무 당연하죠. ‘웃는 남자’는 개막 전에 일본 토호와 계약했고, 중국의 오퍼도 엄청납니다. 아시아는 얼마든지 나갈 수 있지만, 한국과 큰 차이 없어요. 뉴욕, 런던에 가야 ‘뮤지컬 한 번 볼까’가 되죠. 전세계 공통으로 싸우는 공간이기에 의미가 있어요. 하루도 안 쉬고 공연하는 뉴욕과 런던에서 ‘라이온킹’ ‘마틸다’와 대등하게 승부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 뮤지컬이 영미시장에서 대등하게 승부할 경쟁력이 뭘까. 그도 아직 “찾고 있는 중”이란다. “벌써 찾았으면 여기 안 있겠죠. 일단 그 시장에 흡수되는 게 우선이에요. 지금 엄홍현이 미국에 왔다고 보러오라고 하면 누가 오나요. 우리가 너네 이상 만들 수준이라는 경쟁구도를 만들어 놓는게 중요해요. 끊임없이 노크하면 답이 오지 않을까요. 내년 안에 영미 현지 법인을 구축해서 부딪치면서 시작할 거에요.”
“2022년엔 한국 창작진만으로 승부할 것”
김준수 캐스팅은 신의 한수였지만, 현재 뮤지컬판의 암초로 꼽히는 ‘남자배우 개런티 거품’의 시작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개런티 거품이라고 제가 욕을 엄청 먹지만, 분명한 건 준수가 처음엔 아주 싸게 계약했다는 거예요. 워낙 잘 되니 올라간 거죠. 개런티에 관해 지금은 서로 타협점을 찾는 단계인 것 같아요. 이제 끝까지 왔다고 서로 인식하는데, 제작진이나 배우나 다 같이 살 수 있는 선을 찾겠죠.”
무대예술 전공자가 아닌 탓에 업계에서 ‘이단아’로 통하며 설움도 겪었다. 하지만 ‘내가 대중이다’라는 마법을 스스로에게 걸고 겁 없이 덤볐다. “음악·대본·무대,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저 내가 보는 게 대중의 눈이라고 믿었어요. 뮤지컬은 돈으로 되는 것도 아니더군요. 박명성 선배는 제게 ‘뮤지컬은 의지로 하는 거다’라고 하셨고, 신춘수 선배는 ‘최소한 10년은 넘어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이제 그 뜻을 알겠어요. 뮤지컬은 사람의 끈끈함으로 치고 받으며 에너지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업계에서 희생도 봉사도 하면서 요즘에야 좀 인정받게 됐죠.”
EMK는 최근 카카오와 합자회사 계약으로 또 한번 화제가 됐다. 그간 쌓아온 입지로 카카오의 공연사업 진출에 힘을 실어주는 한편, 든든한 자금원을 확보해 창작 뮤지컬 제작과 세계 진출에도 더욱 힘을 받게 된 것이다. “창작뮤지컬 세계화를 위해 계속 달릴 겁니다. 신작들이 얼마나 잘나올지 확신은 못하지만, 창작진에게 우리 일은 작품 하나가 아니라 세계로 가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란 걸 잊지 말라고 얘기해요. 곧 직원을 많이 보충할 계획인데, 내가 끝까지 해도 안되면 나보다 더 뛰어난 능력자가 세계로 끌고 가길 바라는 것입니다.”
글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신인섭 기자·EMK뮤지컬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