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웬디 미첼·아나 와튼 지음
공경희 옮김, 소소의책
책 마지막의 ‘옮기고 나서’(역자 후기)를 읽은 뒤 책장을 덮었다.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 검색창에 ‘치매’라고 입력했다. 그 두 글자 속에 담긴 것들이 짓누르는 압력을 실제로 느낄 수 있을 사람이 주변에 얼마나 될까. 고백하자면 나는 잘 몰랐다. 몇몇 지인으로부터 가족 친지 중에 치매 환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전까지는 내 일이, 내 가족 일이 아니었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쳤다.
두 딸을 둔 싱글맘의 뭉클한 고백
“머리에 목화솜이 든 느낌이었다”
힘겨운 투병에도 유머 잃지 않아
웬디는 남편과 이혼한 뒤 두 딸을 홀로 키워온 싱글맘이다. 이혼 뒤 청소일 등으로 생계를 이어갔고, 30대 중반부터 여러 병원과 NHS(영국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근무했다. 58세였던 2014년 그는 조깅 도중 넘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그것도 세 차례나. 그는 치매가 찾아온 초기 증세를 “머리의 반에 목화솜이 든 느낌이 수 개월씩 지속되었다”(16쪽)고 소개했다.
물론 그런 부류의 무용담만을 늘어놓는 책은 아니다. 병세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나빠진다. 두 딸이 있지만, 함께 살지 않는 그는 혼자서 일상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낸다. 조금 전 일조차 돌아서면 기억나지 않는 상황이 잦아진다. 그는 포스트잇에 순간순간 했던 일을, 또 해야 할 일을 적어 곳곳에 붙여놓는다. 또 해야 할 일은 사소한 것조차 잊어도 다시 알 수 있도록 아이패드 알람 앱을 설정해 자신에게 통보한다. 이처럼 그는 좌절할 위기마다 해결 방안을 마련한다.
책에는 웬디가 치매에도 장점이 있다며 이를 소개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봤던 영화를 보고 또 봐도 새롭다는 점, TV에서 경연 프로그램 반복해서 봐도 우승자를 모르는 점 등”(121쪽)을 치매의 장점으로 꼽았다. 애잔한 마음이 들면서도 엷은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그를 보면서 세상이 얼마나 치매(환자)에 대해 왜곡된 시선으로 오해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와 관련해 그는 “(치매에) ‘시달린다’ 대신 (치매를) ‘안고 산다’로 바꿀 수 있다”면서 “늘 ‘치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라고 지칭하는 미디어 역시 도움이 안 된다”(185쪽)고 지적한다.
책은 웬디와 기자 출신의 논픽션 작가인 아나 와튼이 함께 썼다. 아나의 아버지도 치매 환자였다고 한다. 두 사람의 합작품이지만, 한 사람의 목소리로 읽는데 어색함이 없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웬디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다만 중간중간 지금의 웬디가 과거의 웬디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목이 반복해서 나온다.
이 책의 제목인 『내(지금의 웬디)가 알던 그 사람(과거의 웬디)』은, 치매로 인해 다른 사람처럼 변했지만, 사실은 한 사람이란 걸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또 하나, 공경희 씨의 미끄러운 번역 덕분에 조금은 이질적일 수 있는 이국 배경의 이야기를 내 이웃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었다.
장혜수 기자 hsch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