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홍석현 지음, 메디치미디어
남한의 일방적 서두르기는 금물
북한의 자발적 변화 이끌어내야
그런가 하면 그 반대 방향에서 남북한 평화공존을 ‘국가연합’이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결합해야 한다고 보는 진보적 민족주의의 아이디어도 급진성을 담은 이상주의적 관념에 불과하다. 이러한 관점은 냉전을 통해 변형된 한국 민족주의의 분열증적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민족 감정은 일민족일국가 원리 위에서 통일국가의 염원을 실현코자 하는 감정의 원천이지만, 동시에 바로 그 힘은 분단과 전쟁을 불러왔던 파괴적 폭발성을 갖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늘 남북한 적대관계는 물론 ‘남남 갈등’으로 표현되는 국내의 이념대결을 불러들일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또한 평화공존의 과업을 위해 긴 시간의 퍼스펙티브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서두르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그것은 ‘남남 합의’를 경시하는 것이고, 남북한 간 정치, 경제, 국제관계 등의 모든 면에서 극도의 불균형을 무시하는 것이며, 정부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 남북 관계의 단기 성과를 이벤트화하는 보여주기식 사업에 경도되는 것이다. 국제관계의 현실주의는 한미동맹의 중심성은 물론, 한일관계의 중요성 또한 강조한다.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공존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현재 빠른 속도로 재편되고 있는 동아시아 국제정치 환경의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데서도 한국 외교와 안보 정책의 중심축이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생각을 가두어온 협소한 이념 틀을 벗어나 지금은 남북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큰 비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에서 저자는 지적 깊이와 사려 깊음을 통해 큰 설득력을 갖는 대안적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이 독자들의 큰 관심 속에 널리 읽히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최장집 고려대 정외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