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화의 A-story] ‘올해의 젊은건축가상’ 수상작으로 본 트렌드
다소 날 선 질문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지난 6월 서울 돈의문 박물관마을 서울도시건축센터에서 열린 ‘2018 젊은건축가상’ 공개 심사장. 한국 건축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건축가를 뽑는 자리에서 나온 질문이다. 소위 ‘집장사’라 불리던 부동산 개발업자의 영역은 오랫동안 건축계에서 터부시 됐던 터다. 그런데 질문을 받은 젊은 건축가, 문주호씨(경계없는 작업실 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의 대답이 능청스러웠다. “네 저희 업잡니다.” 디자인으로 부동산의 수익성을 올릴 수 있다며 스스럼없이 말해오던 팀다운 답변이었다.
03학번 뭉친 ‘경계없는 작업실’
임대 수익 높이는 생활밀착 디자인
설계 자동화 프로그램도 선보여
남정민 서울과기대 교수
화분 겸용 꽃 심는 벽돌 만들어
삭막한 벽 대신 싱그러운 경관
건축이 바뀌고 있다. 우리 생활에 더 가깝고, 쉬운 건축을 향해서다. 젊은 건축가를 주축으로 일고 있는 변화이자 이들의 생존법이기도 하다. “건물을 잘 디자인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직설 화법으로 소통하거나, 기성세대 건축가들이 관심 갖지 않던 도시 공간의 작은 부분을 디자인하는 일에도 뛰어든다. 올해 젊은건축가상 수상팀을 통해 그 현장을 살펴봤다.
“건축계의 유니클로가 되고 싶다”
랜드북에 들어가서 지번을 입력하면 땅과 관련된 온갖 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땅의 용도, 법규를 바탕으로 이렇게 지으면 된다는 건축 설계 전망, 인근 150m 내 신축 개발 현황 등이 일목요연하게 나온다. 하이라이트는 집을 지어 임대했을 때 수익률을 별 평점으로 매긴 부분이다. ‘디자인과 수익의 균형을 맞추는 건축가 그룹’이라는 자신들의 콘셉트를 위트있게 표현했다.
예를 들어 경계없는 작업실이 최근 준공한 서울 후암동 다가구 건물은 랜드북의 법규 분석에 따르면 별 3개짜리다. ‘건축법에 따른 제한이 보통 수준이고, 꼼꼼한 설계를 통해 추가 면적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도 곁들여진다. 지번만 입력하면 얻을 수 있는 정보다.
이를 바탕으로 경계없는 작업실의 아이디어가 더해진다. 주변 건축물의 층별 단위 면적당 임대료를 계산해 비워낼 공간을 디자인한다. 계산 결과 2층의 임대료가 가장 적었다. 그래서 후암동 다가구 건물은 2층의 한가운데를 뚫었다. 그 덕에 동네 사람들은 시선과 발길이 닿는 숨구멍 같은 공간을 확보하게 됐고, 건축주는 임대료 수익을 더 알차게 올릴 수 있었다.
지난해 완공한 삼성동 오피스 빌딩은 89.4㎡ 규모의 땅에 6층 건물을 지어 올렸다. 층 당 전용면적이 29.7㎡ 밖에 안 되는 빌딩의 가느다란 모양새가 ‘오벨리스크’를 연상시킨다. 경계없는 작업실에서 토지 매입부터 개발 계획, 건설사업 관리(CM)까지 맡은 프로젝트다. 세 명의 공동 대표가 각각의 장기를 살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근 젊은 건축가들이 집단 체제로 사무실을 운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방면으로 활동하며 협력해 생존하기 위한 장치다.
“2013년 창업했을 때 협소주택 같은 소규모 필지의 개발이 시작되면서 기회가 왔습니다. 지금까지 돈 많은 자본가가 건축주였다면 여유 자금이 많지 않은, 좀 더 다양한 건축주의 시대가 온 거죠. 비용과 관련된 현실적인 지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래서 수익성을 디자인에 더 적극적으로 반영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건축이 힘을 잃지 않고 완성되려면 함께 고민해야 했습니다.”
더 나은 도시 환경을 위해 건축이 더 쉬워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래서 설계 자동화 프로그램을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조성현 대표는 “기술을 통해 전문가들만 쉽게 접근하던 건축 관련 정보를 누구나 접할 수 있게 한다면, 소외된 다수를 위한 더 나은 건축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마치 패션계의 SPA 브랜드처럼 ‘건축계의 유니클로’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수직 정원 생기니 으슥한 골목길 훤해져
그는 공장에서 제작한 콘크리트(Precast Concrete) 패널에 불룩한 화분 주머니를 달은 ‘리빙 포켓’도 개발했다. 타일처럼 얇은 PC 패널에 유리섬유를 넣어 강도를 더해 완성했다. 남 교수는 이 패널을 우면동 유치원 건물의 마감재로 썼다. 그 덕에 아이들은 눈높이의 벽면에서 꽃이 피고, 식물이 자라나는 풍경을 볼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