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의 스타일 토크
신동헌(이하 신)=날씨가 선선해지면서 멋 내기 좋은 계절이 온 것 같다. ‘남자는 슈트’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계절이 아닌가 싶다.
적당히 배도 나오고 중후한 얼굴
신중하게 입은 슈트가 멋져 보여
‘패션피플’처럼 튀는 멋도 좋지만
은갈치 양복, 핑크 넥타이는 글쎄 …
네이비·그레이 계열 슈트가 무난
재킷은 그린·아이보리 도전할 만
신=슈트는 안 입어 본 사람에게는 한없이 어색하고, 자주 입으면 입을수록 멋이 나는 것 같다. 특히 20대보다 40대 이상의 남자가 입을 때 멋진 것 같은데, 그것도 ‘관록’ 때문일까?
브랜드보다 내게 잘 어울리는 슈트가 좋아
신=뭔가를 아끼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는 좀 ‘특이한 사람’으로 보이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패션피플’이 되겠다며 슈트가 너무 고루하지 않도록 멋을 부린다고 노력했다가 은갈치 양복에 핑크 넥타이를 하고 놀림감이 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지 않나?
남=멋이란 무엇인가. TV나 잡지에 나오는 유명인의 룩을 그대로 따라 입으면 쓴 돈에 비례해서 멋이 생기는 걸까. 혹은 너도나도 다 따라 하는 유행과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면 고독하지만 고고한 멋을 터득하는가. 남자의 멋이란 직업이나 재산, 키와 얼굴로만 드러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키가 크지 않고 적당히 배도 나왔으며, 인생의 무게가 얼굴에 드리운 우리 주변의 남자가 자신의 체형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입은 슈트가 멋진 것 아닐까. 인간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는 가치, 그게 바로 패션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신=슈트를 입을 때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것을 몇 가지 꼽는다면?
신=슈트를 입다 보면 자신의 몸에 꼭 맞는 맞춤양복을 욕심내게 된다. 똑같은 슈트인데 기성복보다 저렴한 것이 있는가 하면 기천만원하는 것도 있어 가격대가 너무 천차만별이다. 뭐가 그렇게 다른가?
남=슈트는 대량생산 이전에 맞춤복에서 출발해서 기성복으로 진화했다. 다만 독특한 신체 특성으로 인해 맞춤복이 필요한 체형도 있고, 많은 사람의 사이즈를 평균으로 만든 기성복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체형도 있다. 통계적으로 본다면 기성복을 입어야 할 분들이 더 많다. 그러니 자신에게 필요한 걸 선택하는 문제지 어느 옷이 더 뛰어난지 논쟁할 일은 아니다. 맞춤복들은 최선의 소재와 전통적인 수작업 제작 방식을 따라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만들기 때문에 기본적인 비용이 있다. 여기서 원단 커팅, 다림질, 바느질 등 수작업에 들어가는 방식이 최종 가격의 차이를 도출하는 함수다. 그러니 몇백 년 전 방식을 그대로 재현해서 만드는 맞춤복도 있고, 중간 과정을 기계화해서 심플하게 만드는 맞춤복도 있으니 그렇게 가격 차이가 난다.
신=기성복보다 싼 맞춤정장은 오히려 기성복보다도 몸에 잘 맞지 않는 경우도 있던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남=여러 가지 형태의 옷이 있다. 마진을 적게 내면서 가격을 합리적으로 내는 맞춤복도 있고, 정확하게는 맞춤복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대량생산 공장 방식을 적용해서 몇 가지 심플한 형태의 개인화를 적용하는 맞춤복형 옷도 있다. 언제나 중요한 건 내가 필요한 슈트의 스타일이나 제작 방식을 스스로 생각해 보는 자세다. 아무리 탐나는 슈트라도 내가 생각해 둔 예산을 한참 넘는 건 부담이고, 가격은 너무 매력적이지만 내 직업이나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는 슈트라면 결국은 낭비가 된다.
카키·블루 등도 유머러스하게 갖춰 입었으면
남=슈트를 직접 다루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옷에 관심이 많은 분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잘 알면서 또 다른 브랜드나 테일러에도 흥미를 느끼며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그러면 브랜드마다 디테일이나 패턴의 특성도 보고, 비교의 재미도 느낀다. 전통과 규범이 있긴 하지만 옷도 각자의 취향이 앞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얼마 전 남훈 대표가 권해서 나폴리 스타일을 대표하는 스틸레 라티노 슈트를 맞췄는데, 좀 충격을 받았다. 나는 키가 188㎝나 돼서 언제나 슈트가 껑충하게 뒤로 재껴진 느낌을 받는데, 키가 너무 크고 말라서 어쩔 수 없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버튼의 높이를 재서 V존의 위치를 낮추더라. 여러 번 슈트를 맞춰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어디를 재고, 어디를 조절하는지도 제작자마다 모두 다른 건가?
남=멀리서 보면 다 비슷한 슈트지만 영국과 이탈리아의 여러 맞춤복은 스타일과 패턴, 철학에서 지향점이 아주 다르다. 몇 가지 사례지만 영국 맞춤복들은 단단한 어깨 라인에 허리가 잘록하고, 바지도 좁게 만들어 준다. 이탈리아는 도시마다 또 다르다. 나폴리는 어깨 라인이 부드러운 것도 있고, 하늘을 향해 곡선을 이루는 스타일도 있다. 피렌체는 보수적이고 밀라노는 현대적인 느낌이다. 다만 이런 맞춤복들이 공통으로 지향하는 바는 입는 사람의 신체적인 결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려 주는 것이다. 테일러마다 사이즈를 재는 방법이 다르고, 패턴을 그리는 방식도 다르다. 그러므로 세상에 많은 테일러, 맞춤복 브랜드가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다 잘 맞는 옷은 역설적이지만 없다고 본다. 그중에 나의 체형에 맞는 맞춤복이 있는 것이다. 이번에 그것을 발견하신 거고.
신=옷감을 고르기도 쉽지가 않더라. 잘못하면 옷장 속에 똑같은 스타일의 슈트만 주르륵 걸리게 마련인데, 어떤 색상을 기본으로 갖추면 좋은가?
남=남자를 위한 옷들은 기본적인 색상들이 네이비, 그레이, 브라운 등으로 세계적으로 일치하는 편이라 매일매일 TV에 출연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자신에게 어울리는 컬러나 패턴의 폭을 정해 두는 게 좋다. 네이비 슈트라도 계절에 따라 여러 톤이 있고, 미묘한 패턴까지 포함하면 넓게는 네이비라도 디테일이 조금 다른 것들을 모아 두면 일관성 있게 옷 입기 좋다. 슈트는 네이비와 그레이 계열, 재킷은 브라운과 블루 계열을 기본으로 옷장에 갖춰 두시되, 카키·그린·블루·아이보리 등 스스로 좋아하는 색상도 가끔 유머러스하게 쇼핑해 보시는 것도 권하고 싶다.
신=일반적으로 그린과 아이보리 재킷은 상상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도전해 보면 의외로 피부색과도 잘 어울리고 멋져 보이더라. ‘유머’라고 표현하셨는데, 정말로 걸음걸이가 가벼워지고 자신감이 넘쳤던 경험이 있다. 아, 서양 사람들이 이런 밝은 색상을 입어 버릇해서 만사에 밝고 유머러스했던 건가 싶기도 하고. 그런 도전에 너그러운 사회가 되면 좋을 것 같다.
신동헌 스포츠투데이·에스콰이어 기자를 거쳐 남성패션지 레옹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온갖 놀거리를 섭렵한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패션뿐 아니라 카메라·오디오·전자기타·자동차·모터사이클에 이르기까지 광폭의 취미를 자랑하는 순혈 마초다.
남훈 남자의 복장과 패션에 대한 연구를 삶의 목표로 삼은 클래식 슈트 매니어. 패션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면서 여러 기업과 협업해서 브랜드와 편집숍을 함께 만들었다. 자신만의 남성복 편집숍 알란스도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