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산에서 태어났어요. 이곳 봉화산 중턱에서 어머니가 저를 낳았거든요. 바위 밑 굴속에서 한 달쯤 자랐을 때 할아버지가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제가 얼른 뛰어나갔지요. 그때부터 엄마와 저는 할아버지와 한 식구가 되었던 거예요. 우리는 할아버지가 움직이는 대로 할아버지를 종일 쫓아다니지요. 할아버지는 저희를 절대 묶어놓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산속의 둥근 달과 하얀 깨처럼 쏟아지는 별들, 점점 뚱뚱해져 가는 밤송이, 호두나무 밑에 굴을 파고 사는 두더지, 작은 연못을 제 것처럼 독차지하고 있는 물뱀, 느티나무와 그 밑에 자라는 상사화들은 전부 제 친구들이지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신나게 뛰어다니게 된 후, 갑자기 슬픈 일이 일어났답니다. 자고 일어나니 엄마가 사라지고 없는 거예요. 할아버지는 엄마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 며칠 만에 돌아온 적이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엄마는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밤만 되면 저는 엄마가 보고 싶어 느티나무 동산에 올라 날이 새도록 울었지요. 어느 날 아침, 작가 아저씨가 와서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어요. 세상엔 너무 많은 불행들이 존재하는구나. 어젯밤에도 울다 지친 나를 아저씨가 창밖으로 내다보더군요. 오늘 아침 할아버지는 엄마를 찾으러 산으로 가셨어요. 저도 할아버지를 따라 산밤나무 우거진 숲을 함께 헤맸지요. 할아버지는 우리 엄마가 올무에 걸렸는지, 아니면 멧돼지들과 싸우다가 쓰러진 것인지 걱정하며 행여 엄마를 만나면 줄 식혜까지 챙겼지요. 그러나 할아버지가 아무리 목메어 불러도 엄마의 모습은 끝내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제 엄마는 표범이 되어 저 먼 별나라로 가신 건가요? 아니면 봉화산 꼭대기에서 사자 꿈을 꾸고 계신 건가요. 세상은 참 알 수 없어요. 우리 동네에서 제일 큰 느티나무도 지난 태풍 때는 끙끙 앓았어요. 세상에서 제일 센 엄마도 아플 때가 있는 건가요. 저를 지키던 엄마는 누가 지켜주나요.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