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이문정, 동녘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
윤난지, 한길사
화실에서 뛰쳐나온 현대 작가들
폭력·질병 등 불편한 현실 담아내
한국에서도 비주류적 시선 활기
혐오와 매혹의 경계에 놓인 작품을 소개하며 “왜 현대미술은 불편함에 끌리는”지, 끔찍한 것도 미술이 될 수 있는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사람들은 대개 ‘균형과 조화’가 어우러진 작품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작가들은 일부러 균형과 조화를 깨고, ‘시선을 잡아둘 만한 불편한 사건’으로서 오브제에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단지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충격에 빠뜨리길 원하는 걸까? 작가 채프먼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작품은 결코 충격을 주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예술가는 더 이상 작업실에 갇혀 물감 범벅이 된 채 괴로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진실은 때로 불편한 그릇에 담긴다. 예술가는 ‘효율적 비판’을 위해 투박하거나 거친 그릇, 때로 혐오스러운 그릇을 선택해 메시지를 담을 수도 있다.
이 책은 ‘폭력, 죽음, 질병, 피, 배설물, 섹스, 괴물’이란 일곱 가지 장으로 나뉜다. 미술계에서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준 문제적 작가들의 작품을 다루면서 불편하지만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생생한 도판 70여 점을 소개한다.
저자는 ‘금기와 혐오’에 관한 사회 관습과 오래된 규칙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특히 여성에 관한 끈질긴 혐오 시선의 역사가 현대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얘기할 때 흥미롭다. 깊이와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만,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주류적인 것에서 벗어난 주변과 하위의 영역을 소개하는데, ‘아직 안 된 것으로서의 여성’이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며 작업을 이어온 여성 미술에 주목한다. 가령 작품 활동을 “여성으로서 겪는 콤플렉스를 예술을 통해 승화시키는 일종의 굿”으로 표현한 윤석남을 여성 미술의 최전선에 있는 작가로 소개한다.
이 책은 한국 현대미술을 집약하고 개관한 의미 있는 작업이다. 모든 예술은 시대와 역사를 반영하기에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를 살피고 흐름을 들여다보는 일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을 보는 일이다. 책은 총 열두 개의 소제목으로 분류되어 있다. 꼭 순서대로가 아니어도 좋으니 관심이 가는 곳부터 펼쳐서, 우리 미술이 걸어온 자취를 따라 책 속에서 느린 산책을 해보길 권한다.
박연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