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감각이 돋보이는 것은 쌀알 크기의 초록 잎을 일일이 그린 기법 때문만은 아니다. 화폭에 스며 있는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시대의 감성과 열망이 무엇보다 마음을 먼저 움직인다. ‘간절히 원하면’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등 작가가 공들여 지었다는 작품 제목들은 그림 속 풍경과 하나가 되어 정겨운 이야기로 다가온다.
한국화가 이영지 개인전
장지에 분채, 섬세한 터치
“일상의 기쁨 담고 싶었다”
나무와 풀과 꽃, 새를 통해 작가가 집요하게 매달린 화두가 ‘행복’이었다. 그런데 그의 그림은 뜻밖의 얘기까지 전해준다. 공중에 떠다니는 듯한 앙상한 줄기의 나무는 작가의 외롭고 불안했던 시간을 말해주는 것 같고, 들판에서 소소한 일상을 즐기는 새들은 ‘함께 있음’의 기쁨을 대변하는 것 같다. 몇 년 전 전시에서 한 여성 관람객이 이 작가의 작품 앞에서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아들이 생각났다”며 눈물을 훔쳤다는 이야기가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 관람객은 그림을 구매했고 "매일 작품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고 전해왔다”고 한다. 20대 초반에 불의의 사고로 부모님을 여읜 작가가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았던 그리움이 전해졌던 것일까.
성신여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이 작가는 장지에 분채로 그림을 그린다. 나무 그림을 그려온 지도 벌써 10년 째다. “세부 묘사만큼 밑 색을 앉히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는 그는 “오래된 회벽 느낌을 살리기 위해 장지에 먹을 입히고 마른 붓질을 하고 색을 입히는 과정을 반복한다”고 했다. 이 작가는 “전에는 제 그림이 누군가를 위로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게 오만이었다”며 “그림을 그리며 치유를 받는 것은 저 자신이다. 그림을 통해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8일까지.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