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였던 카잘스는 스페인내란 이후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원으로 파시스트 프랑코 정권이 들어서자 조국을 떠났으며, 정치적 ‘중립’을 명분으로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의 다수 국가들이 프랑코 정권을 인정하자 오랜 세월 동안 해당 국가들에서의 공식적인 연주를 중단했다. 프랑코는 카잘스가 97세의 나이로 사망한 지 2년 후에야 죽음으로써 카잘스가 영원히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스페인 동북부에 위치한 카탈루냐는 1930년대 초중반 자치권을 획득하였으나 프랑코에 의해 자치권을 빼앗겼고 카탈루냐어는 공용어의 지위를 박탈당했다.
카잘스는 자신의 조국에 대하여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무려 11세기에 카탈루냐가 이 세상에서 전쟁을 없애기 위한 의회를 소집했다는 사실을 자랑으로 여겼다. 카잘스는 한 인터뷰에서 “높은 수준의 문명이 있었다는 증거로서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되물었다. 사실 모든 전쟁은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최종’ 결정되고, 그로 인한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지배계급이 아닌 일반 국민들이다. 카잘스는 이미 중세 때 카탈루냐의 헌법에 국민들이 지배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선언한 구절이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당신과 동등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합치면 당신보다 위대합니다.” 이 대목은 현재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선언과 그대로 일치한다.
극소수의 매파들을 제외하고 전쟁을 원하는 국민은 없다. 그 어떤 최악의 상황도 차라리 전쟁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권력자들이 만들어낸 ‘가짜’ 명분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잃는다. 전쟁과 분단의 상처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한반도에서 ‘평화’보다 더 중요한 ‘공통’의 목표는 없다. 전쟁의 가능성이 지속되는 한 한반도에 “높은 수준의 문명”은 없다. 지지부진해진 남북미 대화가 더 절실한 이유이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