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산수 시즌2 ⑪ ‘무진기행’ 순천
순천의 원도심인 부읍성 자리는 난봉산과 봉화산 사이에 끼어있다. 쇠락했던 동네가 ‘문화의 거리’로 새 단장을 하며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들어서고 있다. 매산등 언덕으로 이어 지는 길에는 족보 있는 근대건축물인 교회·병원·학교들이 줄지어있다. 이끼 낀 기와를 이고 있는 매산중학교 돌담길 앞에서 발길을 한참 멈췄다. 근대 호남 동부지역 선교의 중심이라 그럴까, 순천 시민 36%가 기독교인이란다. 인구가 늘며 도심은 봉화산을 남으로 돌아 동쪽까지 넓어졌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김승옥은 『무진기행』에 이렇게 썼다. 작가의 고향인 이 곳이 배경일 텐데, 안개 자욱하던 순천은 국가정원과 습지 덕에 생태문화의 대명사가 돼 있다.
여기서 나고 자란 배일동 명창은 그래도 고생스럽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이제 내 부모님이나 당숙 세대 분들이 더 신식이 됐어요. 나는 아직도 어릴 때 들으며 자란 노랫가락 ‘목포의 눈물’을 품고 그리며 사는데, 이 양반들은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더 즐겨 부르고, 나보고 구식이라고 하니 알쏭달쏭해요. 고향의 흙은 옛날 그 흙인데 사람이 변해서 흙도 변한 것 같네요. 어디 내 고향만 그럴까요. 천지가 그 모양이죠. 허허.”
그림·글=안충기 기자·화가 newnew9@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