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상황은 터프하다.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두 달 반이 지났지만 비핵화 협상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터프한’ 북한 지도자가 종전선언과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하면서 미국의 비핵화 조치(핵·미사일 리스트 및 비핵화 시간표 제시) 요구에 호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폼페이오, 내주 초 네 번째 방북
북한 핵 리스트 제출 성의 보이면
남북·북미 회담, 종전선언 선순환
카드 신통치 않으면 추가 제재 예상
정권수립 70주년인 9·9절을 앞둔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은 북한엔 일종의 ‘선물’이다. 미 국무장관이 몇 달 사이 네 번씩이나 북한을 찾았다는 점을 김정은 정권의 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협상 파트너인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판문점 실무회담을 통해 그를 초청했다는 설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아직 미국에 ‘선물’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 같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 면담 계획이 없다”며 “만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3차 방북 당시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해 미국 내외로부터 ‘빈손’ 방북이라는 비판을 받은 여파도 있지만, 방북 후 김영철 부위원장이 제시할 카드에 따라 김 위원장 면담 여부가 맞물려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북한이 폼페이오 장관에게 핵·미사일 리스트와 비핵화 시간표와 관련해 성의를 보일 경우 3차 남북 정상회담(9월 중) → 2차 북·미 정상회담 → 3자 또는 4자(중국 포함) 종전선언으로 이어지는 또 한 번의 비핵화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강하게 희망하는 그림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과 관련,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큰 진전을 이뤄내길 바라고 있다”며 “방북 이후 남북 정상회담 일정과 안건 등이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표시했다.
반대로 북한이 제시한 카드가 신통치 않을 경우 상황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당장 군사적 옵션이 재부상하진 않겠지만 북·미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면서 추가적인 대북 제재가 단행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8월에만 세 차례나 독자 제재를 발표한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제재는 비핵화 속도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왔다.
워싱턴 조야에서도 여전히 회의론이 우세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23일 자 ‘진실의 순간에 맞닥뜨렸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폼페이오는 김정은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다”며 “그는 현실과 사실이 아니라 대통령이 보고 싶어 하는 것에 근거하는 정책 추진의 ‘포로’가 돼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서울=차세현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