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정의 월드 베스트 호텔&레스토랑
서유럽에서 좁은 지중해만 건너면 모로코 영토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어서 멀게 느껴지지만, 유럽의 귀족과 부자는 오래전부터 이국적인 매력을 따라 모로코를 찾았다. 중세 아랍 건축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오래된 도시가 볼 만하고, 사하라 사막과 아틀라스 산맥의 풍광도 압도적이다. 특히 마라케시는 11세기 도시가 건설된 이후 오랜 세월 모로코 정치와 무역의 중심지였다. ‘붉은 도시’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성벽과 모스크가 붉은 흙으로 되어 있는 점도 인상적이다.
마라케시 럭셔리 호텔 ‘로열 만수르’
모로코 전통양식 '리아드' 개조
현 국왕, 4년에 걸쳐 직접 건설
미쉐린 3스타 셰프 레스토랑 운영
손님 몰래 24시간 버틀러 서비스
최근 마라케시에서는 오래된 리아드를 호텔과 레스토랑으로 탈바꿈하는 사업이 활발하다. 전통적인 아름다움은 남기되, 현대적인 편리함을 더하는 것이다. 마라케시에는 서로 다른 성격과 모양을 지닌 리아드가 많아 호텔 투어만으로도 훌륭한 여정이 만들어질 수 있다.
마라케시의 리아드 호텔 가운데 최고 중의 최고는 ‘로열 만수르(Royal Mansour)’다. 광장을 중심으로 종일 사람과 마차가 가득한 곳. 수크(Souk)라 불리는 전통시장의 구불구불하고 좁은 골목에서 일상의 소음이 넘쳐나는 곳. 수많은 여행자가 ’혼돈(chaos)’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이 오래된 도시의 중심에 세계 최고 수준의 럭셔리 호텔이 자리 잡고 있다.
로열 만수르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담장 밖의 모든 소란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이런 번다한 장소에 이렇게 화려한 호텔이 숨어 있을 수 있을까. 정문 앞에 선 순간에도 들었던 생각은 한순간에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로열 만수르의 객실은 서로 다른 디자인과 크기의 리아드 53개로 구성되어 있다. 루프톱 테라스, 개인 풀, 내부 정원, 거실, 식당이 리아드마다 따로 있어 호텔 안에서도 프라이버시가 보장된다. 베두인 스타일의 차양 아래에서 공연을 감상하며 비밀스러운 저녁을 즐길 수도 있다. 로열 만수르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리아드이고, 그 안에 나만의 리아드가 또 있는 셈이다.
리아드들을 연결하는 커다란 정원은 분수와 연못, 폭포로 장식되어 있다. 아치와 철문으로 이어진 정원의 복도와 오솔길은 야자나무와 올리브나무가 구석구석 그늘을 드리우며 낮에는 오렌지와 레몬 꽃이, 저녁에는 재스민 향이 공기를 채운다.
알람브라 궁전의 이슬람 양식인 무어 스타일 모자이크와 스테인드글라스, 장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은세공 장식물과 삼나무 조각,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한 벨벳과 실크 가구. 들어서는 순간, 이제까지 경험한 어떤 공간과도 다른 공감임을 깨닫게 된다.
30분 정도 방을 비운 사이, 요술 항아리의 ‘지니’가 왔다 간 것처럼 음료와 과일이 준비되고 침대가 정리돼 있었다. 말 그대로 『아라비안나이트』의 한 장면, 꿈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이 놀라운 호텔의 소유주는 놀랍게도 모로코의 현 국왕 모하메드 6세(Mohammed VI)다. 모로코를 대표하는 걸작을 만들기 위해 1500명이 넘는 장인을 모아 약 4년에 걸쳐 호텔을 지었다고 한다. 예산 같은 것은 애초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다.
150만원에 이르는 하룻밤 숙박료가 부담스럽긴 해도, 감히 왕궁의 경험을 다른 호텔과 비교할 수는 없다. 모로코 왕실과 국왕의 손님도 로열 만수르에서 묵기 때문이다. 숙박이 어렵다면 짧은 티 타임이라도 가져보시길 바란다. 호텔은 여행객을 위한 숙소라지만, 한 나라의 자부심이 담긴 대형 예술품이 되기도 한다.
인류학 박사이자 고품격 여행사 ‘뚜르 디 메디치’ 대표. 흥미진진한 호텔과 레스토랑을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품격 있는 여행 정보를 알려주는 여행사가 없어 아예 여행사를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