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국립극장 2018-19 시즌 간담회에서 국립창극단이 ‘패왕별희’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자들이 여장을 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경극 레퍼토리를 대만 연출가 우싱궈와 협업해 창극으로 재해석한다는 계획인데, 김성녀 예술감독은 “경극의 양식을 차용해 남성 창극으로 만들고 싶다”는 구상을 밝혔다. “전작 ‘트로이의 여인들’에서 헬레네의 고혹적인 매력을 뽐냈던 김준수(사진)를 우희 역에, 거꾸로 여배우 이소연에게 장수 역을 시키는 것도 생각중”이라고 했다. 실현된다면 한 무대에서 여장 남자와 남장 여자의 진검승부가 펼쳐지는 셈이다.
세계적으로 성별교환과 복장도착은 극예술의 오랜 전통이다. 근대 이전에는 여성이 무대에 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비극과 셰익스피어는 물론, 일본의 가부끼와 노, 우리의 판소리도 원래 남성의 영역이었다. 일본에서는 이에 대한 ‘미러링’ 차원에서 1913년 ‘다카라즈카’라는 여성들만의 무대가 생겼고, 우리도 1948년 여성 국극이 탄생했다. 한때 임춘앵·조금앵 등 대스타를 낳았던 여성 국극이 60년대 이후 쇠퇴해 지금은 소멸 직전인 것과 달리, 다카라즈카는 중장년 여성들의 탄탄한 지지 속에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가문 중심으로 대를 잇는 가부끼와 노도 건재하다. 일본 공연계에선 남장 여자와 여장 남자가 당당히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다카라즈카의 ‘오토코야쿠(男役)’에 푹 빠져있던 내게 한 친구가 “멋진 남자가 주인공인 것과 뭐가 다르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오토코야쿠’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뭘까 고민하다 ‘무성의 존재’, 즉 허구의 성이 가진 함의에 주목하게 됐다. 다카라즈카는 프로극단임에도 여학교의 시스템을 내세워 팬덤 자체를 여성이 성역할을 부여받기 이전 ‘젠더리스 월드’에 머물게 한다. 남성이라는 위험한(?) 존재 대신 보이쉬한 선배 언니를 좋아하던 여학교 시절 소녀의 마음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아름답고 섬세한 순정만화 남주인공처럼 남성성과 여성성의 경계 자체를 없애버리는 ‘젠더 해방의 쾌감’이랄까.
역으로 ‘올메일 플레이(All Male Play)’를 즐기던 일본의 연출거장 니나가와 유키오에게 성별교환의 미학에 대해 물은 적 있다. “젠더의 혼란을 이상야릇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변화를 즐기고 싶은 인간의 두 가지 마음을 충족시키는 게 이런 양식의 매력”이라는 게 그의 답이었다.
여성국극 이후 우리에겐 이런 양식이 사라졌다. ‘헤드윅’ ‘라카지’ 등 성소수자 문제를 다룬 라이선스 뮤지컬에서 드랙퀸 분장을 하는 정도다. 하지만 무대라는 판타지에서라도 고정된 젠더관념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현실 사회도 혐오 전쟁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포용하는 유연한 사회를 향해 가지 않을까. 창극단의 ‘패왕별희’에 기대를 품어본다.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