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단지 인생을 잘못 산 인간?

중앙일보

입력 2018.07.14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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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라디오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라디오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장정일 자선시집, 책읽는섬
 
끝없는 사람
이영광 지음, 문학과지성사

장정일·박철·이영광 나란히 신간
이 시대 고통을 타전하는 소리들
외롭고도 의로운, 그 길을 가리라

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으니
박철 지음, 창비
 
누군가 말했다. 시는 과연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세상에 존재하는 시인의 숫자만큼이나 많다고. 시인마다 시론(詩論)이 있다는 얘기다. 문장을 뒤집으면 시 독자는 행복하다. 그만큼 시 세상이 다채롭다는 얘기니까. 소개하는 세 시집은 다채로움에 다채로움을 더하는 ‘물증’들이다. 한데 묘하다. 각각의 시론이나 시적 태도가 심상치 않은 대비를 이룬다.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영광·박철·장정일 시인. 새 시집을 나란히 냈다. [사진 창비, 중앙포토]

먼저 장정일. 소설이나 칼럼에서 도발적인 그는 시에서는 삐딱하다. 1983년 동인지부터 91년 시집까지 발표한 전체 시 중에 가려 뽑은 자선시집(자기가 골랐다는 뜻이다) 『라디오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스님이 그냥 스님이듯 시인은 그냥 시인이다. 제 좋아서 하는 일이니 굳이 존경할 필요도 없고 귀하게 여길 필요도 없다. 그 가운데 어떤 이들은 시나 모국어의 순교자가 아니라, 단지 인생을 잘못 산 인간들일 뿐이다.”
 
문학 엄숙주의에 염증 느끼는 독자들의 속을 시원스럽게 뚫어주는 큰 목소리다.
 

끝없는 사랑

비상하게 진지한 이영광 시인에게 시는 고통 가운데 터져 나오는 신음 같은 것이다. 새 시집 『끝없는 사람』 뒷표지 시인의 말에서 그렇게 썼다. 언어로 분절되지 못한 것이니 신음은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런데 신음은 침묵에 이어져 있다. “침묵의 미궁에 빠진 영혼이 어쩔 수 없이 타전하는 모든 종류의 기척과 신호”가 바로 시라는 게 이영광의 시론이다.
 
박철의 시론은 ‘시인의 말’ 만으로는 불분명하다. “내 나름의 시 이론서를 하나 쓰고 싶었으니, 이 책으로 대신한다”고 썼으니 모종의 시도를 한 것만은 틀림없다. 새 시집 『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으니』에 실린 한 편 한 편을 찬찬히 뜯어볼 수밖에.
 
『라디오같이…』에서 눈길을 붙드는 건 88년 시집 『길안에서의 택시잡기』에 실린 ‘삼중당 문고’의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계대 불문과 용숙이와 연애하며 잊지 않은 삼중당 문고/ (…) / 어느덧 이 작은 책은 이스트를 넣은 빵같이 커다랗게 부풀어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네.”
 
격한 감정이 야기하는 사람 몸의 극적 변화를 이영광만큼 속필로, 실감나게 잡아채는 시인도 드물 것 같다.
 

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으니

“분노는 말을 때린다/ 말은 분노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은 무섭다/ 말은 눈물을 뿌리며 달린다/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에 닿아야 분노에/ 맞지 않을 수 있나/ 분노를 떨어뜨릴 수 있나/ 질주하는 말은 분노의/ 헝클어진 발음기호다/ 말은 분노를 흐느낀다/ 분노는 말에 매달린다/ 분노는 말을 더듬거린다”.
 
‘말’ 전문이다. 시인의 관찰 대상이 된 사람은 분노에 떨며, 더듬거리며, 말처럼 내달리는 말 아닌 말을 하고 있다.
 
시집 제목과 관련된 듯한 작품 ‘촛불’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리바이어던에 맞먹는 ‘백만 촛불’이 전지전능을 뿜어낸다.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에서 대책 없이 낭만적이고 선한 ‘일(一)인’을 재현했던 박철은 가던 길을 계속 가는 모습이다. 첫머리 ‘빨랫줄’부터 눈길이 머문다.
 
박철의 시론은 아마 ‘너와 나’ 같은 작품에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된 게 아닐까.
 
“외롭지 않고 의롭기 쉽지 않거니와/ 의롭지 않은 외로움 또 어디에 쓰나”라고 했다. 시가 그렇고 시인이 그런 것일 게다. 외롭고 의로운. 물론 이건 박철의 시론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