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선영의 IT월드
그러나 이번 4차위 회의에는 유영민·백운규·김영주·홍종학·김현미 장관과 문미옥 과학기술보좌관은 모두 보이지 않았다. 장관들의 빈자리에는 해당 부처 차관들이 대리 참석했다. 이날 회의가 여느 때보다 더 큰 관심을 받은 것은 국내 1위 카풀 애플리케이션(앱) 업체인 ‘풀러스’가 규제 벽에 가로막혀 영업이 힘들어져 직원 70%를 해고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였기 때문이다.
4차산업혁명위, 장관들 전원 불참
민간 위원 “보고만 받는 수동적 회의”
대통령 독려에도 기업들 체감 못해
차량 기반 공유경제 산업 도산 위기
“실망한 기업들 외국으로 나갈 것”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 위원은 4차위의 실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구체적인 비전을 놓고 위원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우리가 이렇게 한 번 해봅시다’라며 적극적으로 의논하는 자리가 아니다. 우선 정부 부처에서 데이터·스마트시티 등 여러 안건을 올린다. 위원들은 이에 관한 자료를 미리 받아 읽어보고 간단히 의견을 내고 심의한다. 매번 회의 때마다 보고만 받는 수동적인 회의의 연속이다. 규제 혁신은 정부의 우선순위가 아니더라.” 이렇다 보니 4차위는 지난 9개월간 카풀 앱 문제는 제대로 다루지도 못했다.
“택시업계 눈치 보느라 대안 못 내놔”
외국에서는 우버(미국)·디디추싱(중국)과 같은 글로벌 차랑 공유기업들의 기업가치가 수십조원에 달할 만큼 관련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부가 주저하면서 차량 기반의 공유경제 산업은 모조리 도산 위기에 처해있다.
정부가 규제 혁파에 아예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각 부처는 지금도 신산업을 가로막는 고질적인 규제 문제를 타파하기 위한 여러 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5일부터 산업부·중기부 등 관계 부처, 지방자치단체들과 함께 충북 오송, 경북 구미 등 6개 국가산업단지와 드론·스마트공장 관련 업체들을 방문하는 ‘투자지원 카라반’(현장방문단)을 가동하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 각종 애로 사항과 규제 문제를 직접 듣기 위해서다.
정부 옴부즈맨·TF는 홍보대사에 그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인기 배달 앱 ‘배달의 민족’을 창업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를 ‘혁신성장 옴부즈맨’으로 위촉했다. 김 대표는 앞서 옴부즈맨으로 위촉된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과 함께 규제를 풀기 위해 정부와 벤처기업간 창구 역할을 하게 된다. 규제 개혁 주무부처로 꼽히는 국무조정실은 민·관 합동 규제개선 추진단과 신산업규제혁신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걸림돌을 제거하겠다”며 ‘사필귀정 TF’(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사항을 귀 기울여 바로 잡는 TF)를 만들었다.
국무조정실에서 규제 혁신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신산업규제혁신위원회에서는 그간 400건의 규제를 해결했다. 이번에는 ‘우선 허용, 사후 규제 체제’를 적용할 과제를 40개 더 발굴해 총 78개의 과제가 ‘우선 허용 체제’ 과제로 선정했다. 사전에 문제를 미리 발굴해 싹을 잘라버리겠다. 사전 허용체제의 ‘끝판왕’이다.”
끝판왕 정책을 내놨다고 자평하며 숫자로 성과를 읊는 정부와는 다르게 스타트업들은 여전히 규제에 대한 불만과 실망감으로 가득한 분위기다. 특히 기업들은 “산업 현장에서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정부 정책이 사실상 없다”고 지적한다. 옴부즈맨 역시 정부 부처에서 정책 홍보를 위해 으레 선정하는 ‘홍보대사’ 역할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카풀앱 ‘럭시’를 만든 최바다 대표는 “정부는 택시업계 눈치만 보느라 대안 하나 내놓지 못한다”며 “그 사이에 스타트업들은 투자자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는 압박을 받아 사업이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국내 소규모 의류 브랜드의 해외 판매를 중개하는 ‘쿠딩’을 만든 김영일 공동창업자는 “한국 기업들의 수출을 돕기 위해 한국인들끼리 만든 회사인데도 해외에서 사업자 등록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정부 지원 사업자로 선정됐다가 탈락했다”며 “정부가 피부에 와 닿는 규제 타파 정책을 내놓지 않는 이상 많은 혁신 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한국을 빠져나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도 지난달 27일 “정부의 규제 개혁안이 낙제 수준”이라며 예정됐던 ‘규제개혁 점검 회의’를 전격 취소했다. 청와대와 정부 내에서도 정부의 규제 혁신 의지가 미미하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