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희의 맛따라기 - 새우젓 고장 교동도를 가다
서울광장에서 75㎞. 차는 서해 부두로 달리고 미각의 추억은 50년 전 산골 고향, 어머니의 부뚜막으로 달렸다. 새우젓 음식 두 가지가 떠올랐다. 여름 새우젓무침과 애호박새우젓찜.
음력 6월에 살 오르고 껍질 얇아
뽀얗고 통통한 새우젓 맛?값 최고
양력 7월 한 달간 젓새우 금어기
전통적 기준의 육젓 사실상 없어
봄 흉어, 9~10월 추젓 잡이 기대
김장철 ‘새우젓대란’ 우려도 나와
점심 준비하던 어머니는 쌀 일어 앉히고 아궁이 불 지핀 뒤 돌담 위 호박넝쿨에서 뽀드득거리는 애호박을 따온다. 즉석에서 한입 크기로 썰어 사발에 담고 새우젓, 숭숭 썬 파, 다진 마늘 넣고 밥물 넘은 무쇠 밥솥에 앉힌다. 뚝딱 만들어도 맛은 달고 구수한 애호박새우젓찜이다.
교동도에서는 모든 음식 간을 새우젓으로 한다고 한다. 김치 외에도 호박찌개∙애호박두부젓국∙(돼지)갈비젓국∙가지무침∙계란찜 같은 음식을 해 먹는다. 남산포에서 만난 새우잡이 배 대흥호(6.06t 연안자망) 선장 현상록(64)씨 가족은 새우젓 맛을 얘기할 때 ‘달다’는 말을 자주 썼다. 현 선장과 아들 지훈(40)씨의 새우젓 설명을 정리하면 이렇다.
“섞여 잡힌 고기에서 새우를 골라 바닷물 담은 통에 띄워 젓새우만 건지고, 소금에 버무려 통에 담는다. 간을 약하게 하면 새우젓이 빨리 익고 맛도 달착지근하다. 하지만 오래 저장할 수 없어 유통기한이 짧다. 오래 두고 먹으려면 냉동 보관해야 한다. 저온 저장시설이 없던 예전, 쉽게 상하는 한여름엔 젓새우와 소금을 50 대 50으로 버무렸다. 그래도 상할까 불안해 장화 신고 통에 들어가 꼭꼭 밟았다. 요즘엔 75 대 25로 한다. 간을 싱겁게 해야 단맛이 잘 난다. 간이 세면 같은 새우로 담가도 단맛이 덜해 경매 가격이 잘 안 나온다. 젓새우가 상하기 직전 상태의 간일 때 단맛이 가장 좋아 가격이 잘 나온다. 소금에 절여 10일쯤 상온에 뒀다가 냉동창고에서 숙성한다. 절인 후 보름이면 젓갈로 먹어도 되지만 1년은 익혀야 제대로 숙성된다. 영하 4~5도에 두면 오래 익을수록 단맛이 난다.”
2.5~5㎞ 바다 건너 북한 연백평야가 보이는 교동도는 민통선 지역이라 주민들만 섬 주위 1㎞ 이내에서 조업할 수 있다. 남북관계가 가본 적 없는 화해의 길로 나아가는 요즘 교동도에도 평화의 바람이 불고는 있으나 어민들에겐 먼 얘기다. 당장 어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물때가 안 맞았다. 찾아간 24일(음력 5월 11일)은 두 물 날. 21일 조금, 22일 무시, 23일 한 물이었다. 이 3~4일 동안엔 물 흐름이 약하다. 조금은 물이 들고나는 차이가 가장 적은 날이다. 다음날은 무시. 지훈씨는 “무시 날엔 임금님께 진상할 고기도 없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지훈씨는 “지난해는 봄 새우젓(오젓∙육젓) 10드럼(1드럼=240㎏)을 했는데 올해는 아직 1드럼도 못 채웠다. 작년 새우젓이 10드럼쯤 남았는데, 올해는 이걸로 김장철에 대비하면서 9월을 기다린다”며 한숨을 쉬었다.
교동도에서는 양력 기준으로 ▷5월 하순 열흘쯤 오젓 ▷6월 한 달 육젓 ▷9월 12일(이르면 8일)부터 두 달간 추젓 ▷10월 말부터 12월 첫눈이 올 무렵까지 동백하젓 새우를 잡는다. 동백하는 중하라고도 하며, 김장용 생새우로 많이 쓴다. 음력 6월에 해당하는 양력 7월 한 달은 젓새우 금어기다(전남 신안은 7월 15일부터 한 달). 그러니 전통적 의미의 육젓은 사실상 없다. 그나마 살이 가장 많이 오른 양력 6월 새우젓을 육젓으로 친다.
육젓∙생새우로 맛 낸 묵은지+병어회… 돌아서면 생각나는 맛
식당에는 꽃게조림(7만~9만원)이 유명하다. 꽃게탕보다 국물을 적게 잡아 별다른 재료 넣지 않고 이 집 특유의 양념으로 자작하게 졸여 낸다. 농어∙병어∙밴댕이 회를 주문하면 상을 차리고 마지막에 배추김치 한 쪽을 내온다. 꼭지도 따지 않고 담글 때 모양 그대로 큰 접시에 길게 담는다. 맛이 조금이라도 변할까 봐 저온창고에서 맨 나중에 꺼내온다. 취재 간 일행은 꽃게조림보다 김치에 열광했다. 김치 한 가닥에 병어 한 토막이나 밴댕이 한 마리 둘둘 말아 입에 가득 넣고 우물우물 씹으면 다른 양념이나 반찬 찾을 일이 없다.
이 집엔 김치 단골이 많다. 배추∙무∙고춧가루∙파∙마늘∙생강을 직접 농사짓고, 육젓 넣어 담그니 맛이 없을 수 없다. 11월 중하도 갈지 않고 통으로 듬뿍 넣고, 밴댕이∙황석어(황강달이)젓도 통째 들어간다. 꺼내온 김치에 그 모양이 살아있다. 좋은 농산물에 싱싱한 새우와 젓갈, 넉넉히 들어간 김치가 저온창고에서 6~7개월 익어 맛이 달고 시원하면서 깊고 진하다. 한번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을 잊지 못한다. 현 선장네는 해마다 고추 8000주(6612㎡), 김장배추 1000포기를 재배한다.
‘별해별식’에 가려면 미리 전화해봐야 한다. 재료가 없는 날도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바다가 하는 일이니 사전 확인만이 헛걸음을 막을 수 있다. 032-932-5235.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lee.tackhee@joins.com
전직 신문기자. 기자 시절 먹고 마시고 여행하기를 본업 다음으로 열심히 했다. 2018년 처음 무소속이 돼 자연으로 가는 자유인을 꿈꾸는 자칭 ‘자자처사(自自處士)’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