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 개편 방향 4개 시나리오 공개
28일 확정해 정부에 제출 예정
다주택자는 최대 38% 늘 수도
시장은 이미 숨 고르기 들어가
거래 절벽에 집값 하락 우려도
이 두 가지를 합쳐 공정시장가액비율과 종부세율을 동시에 인상하는 게 셋째 시나리오다. 종부세율을 둘째 시나리오 수준으로 올리면서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연 2%포인트, 5%포인트, 혹은 10%포인트 올리는 식이다. 시나리오 중 가장 강력하면서도 시행이 유력한 방안이다. 강병구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종부세율 인상과 공정시장가액비율 상향 조정 등을 적절히 반영해 최종 권고안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 인상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다주택자의 세 부담은 12.5%에서 최대 37.7% 늘게 된다고 재정개혁특위는 추산했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1주택 보유자와 다주택자 간 과세를 차등하는 방식이다. 1주택자의 경우 공정시장가액비율만 연 2~10%포인트 인상하고 종부세율은 그대로 둔다. 대신 다주택자에 대해선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높이는 것과 함께 종부세율도 기존 0.5~2%에서 0.5~2.5%로 높이자는 것이다.
이날 공개된 종부세 개편방안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세제 개편 방향을 짐작할 수 있는 밑그림인 셈이다. 세무법인 서광이 보유세 개편 시나리오에 따른 세 부담을 추산한 결과 당장 종부세율을 올리는 것보다 공정시장가액비율 인상 영향이 더 컸다. 공시가격 10억원인 아파트의 경우 공정시장가액비율을 10%포인트 올릴 경우 올해 40만원이던 종부세를 내년에는 5만원, 내후년에는 10만원 더 내야 한다. 고가 아파트일수록 추가 부담이 커져 공시가격 20억원인 아파트는 100만원 정도, 30억원인 아파트는 300만원 정도 종부세를 더 내야 한다.
종부세율 인상에 따른 추가 부담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공시가격 20억원인 아파트가 14만원 수준에 그친다. 세무법인 서광의 양경섭 세무사는 “이번 권고안에서 종부세율 인상폭이 최대 0.5%포인트 오르는 데 그쳐 영향력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공정가액비율을 지금보다 10%포인트 높은 90%로 올리고 동시에 세율을 인상할 경우 공시가격이 30억원을 넘는 서울 한남동 한남더힐 233.06㎡의 종부세는 올해보다 378만원이 오른다.
재정특위는 향후 과제도 제시했다. 취득세의 경우 세율 및 세 부담의 점진적 인하 필요성이 제기됐다. 지방세인 재산세와 국세인 종부세 간 세율체계 및 과세 방식 개편도 장기 과제로 꼽혔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과세 강화 목소리도 나왔다. 이번 종부세 개편방안은 오는 28일 재정개혁특위 전체회의에서 특위 차원의 ‘부동산 보유세 개편 권고안’으로 최종 확정돼 정부에 제출된다. 정부는 이를 7월 말 발표할 내년도 세법 개정안에 반영할 방침이다.
20억 아파트 두 채 보유세 2649만원으로 껑충
전문가들은 고가 주택의 경우 종부세 개편에 따른 세 부담이 당초 예상보다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강남권 아파트를 중심으로 거래 절벽과 가격 하락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서울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면적 84.97㎡에 살고 있는 1주택자라면 318만원 수준인 보유세가 공정시장가액비율 100%를 적용할 경우 559만원으로 오른다. 현재 시세가 20억원인 것을 감안해 내년 공시가격이 15억6800만원으로 오를 것으로 가정한 분석이다.
강남의 20억원짜리 아파트 두 채를 소유한 다주택자의 경우 종부세를 포함한 보유세는 올해 1375만원에서 내년 2649만원으로 껑충 뛴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을 90%로 하고 세율을 0.5%포인트 인상했을 때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자문센터 팀장은 “시뮬레이션 결과 당초 예측했던 것보다 세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며 “다주택자의 경우 입법 과정까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주택자에겐 공정시장가액비율과 세율을 동시에 높이는 4안이 채택되면 부담이 크다. 정부는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시가 10억∼30억원 기준 주택을 보유한 1주택자의 세 부담은 최대 25.1%, 다주택자는 최대 37.7% 늘어난다고 밝혔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심리적 압박이 가중돼 ‘거래 절벽’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공시가격이 10억원 미만인 주택은 변동이 크지 않아 강남과 강북·수도권 등의 온도차가 날 수 있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은 서울 강남권”이라며 “최근 2~3년간 가격 상승 폭이 가장 커 보유세 부담도 큰 데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등으로 악재가 몰려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부동산 규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참여정부 수준으로 종부세율(주택 3.0%)을 인상하면 세 부담이 22~100%까지 늘어난다”며 “주택 소유주가 임차인에게 임대료를 전가하면 가계의 가처분소득 감소로 이어져 민간 소비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증세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김갑순 동국대 회계학과 교수는 “보유세뿐만 아니라 에너지세 등 세제 개편이라는 이름하에 본격적인 증세 드라이브가 예상된다”며 “증세 필요성에 대한 충분한 근거 제시 및 다양한 정책 검증이 전제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은 이미 숨 고르기 단계로 돌아섰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최근 3개월간 인근 중개소 30여 곳의 거래량이 7~8건으로 지난해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라며 “이번 보유세 강화 여파로 거래는 더욱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5월 전국 주택 매매량은 6만778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만5046건)보다 20.3% 줄었다. 최근 5년 평균(9만506건)과 비교하면 25.1% 감소했다. 특히 서울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의 주택 매매 건수는 1764건으로 전년 동월 대비 60% 가까이 줄었다.
다만 보유세 인상안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란 예측도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보유세 강화가 시장에 부정적인 것은 맞지만 장기간 노출됐던 정보라 큰 충격은 아닐 듯하다”며 “급락보다는 관망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전문위원은 “서울 강남의 주택 소유자들은 그동안 집값도 많이 올랐고 세 부담 역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오히려 지방 집값이 하락하는 양극화가 더 심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월세 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노희순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세 부담이 커진 만큼 이를 임대료에 반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재·염지현·하남현 기자 yj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