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서 우럭 말리던 할머니의 한마디

중앙일보

입력 2018.06.23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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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산수 시즌2 ] ⑦ 목포, 대륙으로 가는 길목

비행산수 목포 라인

목포 서산동은 바다에 바짝 붙어있다. 봉긋하게 솟은 동산 위에 작고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하다. 가파른 계단을 꼬불꼬불 오르다 돌아보니 처마와 처마 사이에 제주 가는 산 만한 여객선이 걸쳐 있다. 좁은 골목에 할머니 두 분이 앉아있다. 한국화가 조용식이 ‘이 동네서 나고 자랐다’며 말을 건네니 말 보따리가 터진다. 한 분은 담벼락에 기대고, 다른 한 분은 대문에 걸터앉아 부채로 파리를 쫓으며 생선을 말리는 중이다. 아침에 시장에서 우럭 세 마리를 사와 배를 갈랐단다. 꾸덕꾸덕 마르면 쪄먹을 요량이다.
 
“그란디 이거시 뭔일이까잉 느닷없이 외지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어라. 대문을 불쑥 열고 들어와서는 돈 많이 줄텐께 이 집 팔 생각 없소 그라요. 이짝 동네가 다 그라제. 아따 내가 평생을 산 집인디 이거 팔아불면 난 어디로 가라고 안 팔아 그랬지라. 이 집에서 얼마나 살았냐고 묻길래 칠십년 살았다고 항께까~암짝 놀래붑디다.”
 
흥이 난 할머니가 찐 감자를 건네줬다. 먹고 있자니 목 메이겠다며 냉장고에서 무화과 즙을 내왔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한때 목포의 위세는 대단했다. 1940년대엔 원산, 부산과 함께 조선의 3대 항구였다. 50년대에는 남한의 6대도시였다. 조 화백은 말한다. “휴대전화가 없던 80년대에 명절에 내려오면 친구들 연락할 필요가 없었어요. 오거리 앞에 있으면 다 만나거든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떠밀려 다녔지요”


하당에 신도심이 들어서고, 그 옆 무안군 남악에 전남도청이 문을 열며 목원동 만호동 같은 목포 도심은 생기를 잃었다. 20여년이 지나 도심재생 바람을 타고 옛 동네에 다시 돈이 몰리니 도시도 생물이다. 목포는 비수도권에서 땅덩이가 가장 작은 도시지만 문화 자산만큼은 어디보다 풍성하다. 
 
그림 속에서 학이 남긴 두 줄기 비행운은 ‘목포의 눈물’과 ‘님과 함께’ 가사다. 그림 아래위를 뒤집어야 보인다. 노래를 부른 이난영과 남진이 목포 사람이다. 지금은 육지가 된 삼학도는 바다에 떠있던 본래 모습으로 그렸다. 오른쪽 아래가 고하도이고 그 앞을 매립한 목포신항에 세월호가 있다. 부산역과 여기 목포역에서 유라시아 횡단열차가 출발하고 도착할텐데, 이래저래 목포는 사연 많고 이야기 넘친다.
 
그림·글=안충기 기자·화가 newnew9@joongang.co.kr